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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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보람의 12년이었습니다

2019-12-31 (화) 윤희균 / VA, 한인노인봉사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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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가 갑니다. 또 한 살을 더 먹겠지요. 팔순도 훌쩍 넘긴 나이라 이젠 세월이 가는 것도 무감각해졌지만 2019년 올해는 특히 잊을 수 없는 한해였습니다.
되돌아보면 미주한인노인봉사회를 설립한 게 2007년이었습니다. 그동안 노인들은 섬김만 받으려는 존재였습니다. 저는 그 타성과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습니다. 노인들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려 하였습니다.
노인들의 작은 힘이지만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고 보람을 느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게 벌써 12년이 되었습니다. 노인봉사회는 설립 취지에 따라 그동안 설과 추석에는 경로잔치를 열어 명절이면 더 외로워지는 어르신들을 위로하였습니다. 봄과 가을에는 노인아파트를 찾아 청소도 해주고 미용 서비스도 해드리며 생일잔치도 열어 드려왔습니다. 또 봄과 가을에 노인들이 집안에서 우울하게 지내지 않도록 경로관광도 실시해왔습니다.
연말에는 독거노인들이나 한인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는 일도 매년 빠지지 않고 해왔습니다.
특히 애난데일 거리청소나 코러스 축제 등 한인 커뮤니티 행사들에서 청소나 교통 안내 등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순수한 목적으로 해온 봉사와 나눔의 활동이었습니다.
저는 처음 이 봉사회를 시작할 때 운전대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자원봉사를 계속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팔십대 중반에 가까워지니 기력도 떨어지고 야간 운전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은퇴를 결심하고 저보다 더 젊고 능력 있는 분들에게 봉사회를 물려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12년간 저는 과분한 사랑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노인봉사회 임원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봉사에 대한 열정은 정말로 감동스러웠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은 불평 한마디 없이 저를 성원해주었습니다.
또 한인사회의 많은 분들과 기관, H 마트 같은 업체에서는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셨습니다. 무명으로 도와주신 분도 계십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분들의 도움과 아름다운 마음이 없었다면 노인봉사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우리 한인들이 얼마나 속정이 많은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사는 어떤 분은 쌀이나 라면, 김 등 선물을 드리면 자기보다 더 어려운 분들에게 드리라며 양보를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우리 한인사회에 희망을 가졌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요즈음 한인사회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한인회나 단체들이 서로 으르렁 대고, 허구한 날 싸우고, 서로를 위하려는 마음도 전보다 못하다고들 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이웃들과 콩 한쪽도 나눠먹으려 하고, 가난한 집안의 형은 학업을 포기하고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으며, 뭇 어른들을 공경하고, 사회나 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힘을 합쳐 극복해온 저력과 끈끈한 인정이 있습니다.

저는 그 따스한 정(情)과 저력이 우리 한인들의 가슴 한 가운데 그리고 한인사회의 밑바닥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이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가 칭찬하고 격려하며 물론 잘못 하면 꾸짖기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조금씩 내려놓고 말입니다.
서로가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화합하면 우리 한인사회는 더 아름다워지고 정이 넘쳐나는 커뮤니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우리처럼 소수계 이민자 사회는 힘을 합쳐 함께 갈 때에만 주류사회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우리 아들딸들이 이 미국사회에서 더 당당하게 설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입니다. 저 같은 늙은이의 소망이 새해에는 꼭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윤희균 / VA, 한인노인봉사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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