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겨울산의 긴 여운…세월이 쉬었다 간다

2019-12-27 (금) 글·사진(구미)=우현석 객원 기자
크게 작게

▶ 경북 구미 금오산

겨울산의 긴 여운…세월이 쉬었다 간다

현월봉에는 정상 표지석이 두 개 있는데, 아래의 것은 예전에 있던 표지석을 옮겨놓은 것이고 정상에 있는 것은 새로 만든 것이다.

겨울산의 긴 여운…세월이 쉬었다 간다

큰 구멍이라는 뜻의 ‘대혈(大穴)’이라 불리기도 했던 도선굴은 수행처이기도 했지만 백성들의 피난처 역할도 했다.


겨울산의 긴 여운…세월이 쉬었다 간다

현월봉에서 바라본 구미시 전경. 날은 흐렸지만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장관을 이뤘다.



서울에서 이른 아침에 출발해도 남부지방 취재는 오후에 시작된다.

이번에도 출발은 일찍 했으나 김천구미역에 도착해 차를 빌리고 점심을 먹고 우왕좌왕하다 보니 오후2시 반이 지나 금오산에 도착했다. 금오산은 초행은 아니지만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는 구미 시내 다른 곳의 취재 일정 때문에 산의 정상인 현월봉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꼭 현월봉에 올라보려고 작심을 하고 나선 길이다. 하지만 시간은 벌써 3시를 향해 가고 있어 해도 짧은 겨울에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취재 길은 왜 매번 이 모양일까.


주차장에서 시작한 산행은 금오산성을 거쳐 해운사로 이어졌다.

금오산성은 고려 시대부터 있던 성으로 이 산이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증명한다. 조선 중종 때 나타나는 기록에 따르면 ‘금오산은 고려 때까지 남숭산이라고 불렸는데, 둘레가 7,644자에 높이가 7자로 산성의 절반이 암벽으로 이뤄져 몹시 험준하다. 여말에 선산·개령·인동·성주 등의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성안에 들어와서 살았으며 당시에는 군창이 있을 정도로 세가 컸다’고 돼 있다.

산성을 지나면 바로 해운사가 나오는데 절의 규모가 작은데다 시간이 늦어져 절에는 들르지 않고 대혜폭포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대혜폭포는 해발 400m 지점에 있는 폭포로 물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고 해서 명금(鳴金)폭포라고도 불린다. 이 폭포의 수원(水源)은 금오산 정상 부근 분지로, 계곡을 따라 흐르다가 이곳에서 폭포로 바뀌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했다는 욕담으로 떨어진다. 폭포의 이름이 대혜(大惠)인 것은 ‘이 물줄기가 이 일대 관개의 유일한 수자원으로 큰 은혜를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여름에 비가 내린 직후 찾았을 때는 수직 30m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이었는데 강우량이 없는 겨울에는 그저 물에 젖은 절벽의 모습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안의영 해설사는 “대혜폭포 위에 대혜담이라는 못이 있다”며 “비가 오고 난 후 못에 물이 많을 때는 폭포가 힘차게 흐르지만 그곳 물이 마르면 폭포의 물줄기가 말라버린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데크 길에 올라 오른쪽으로 꺾어지면 도선굴로 향하는 돌계단이 나온다. 도선굴은 암벽에 뚫린 큰 구멍이라는 뜻으로 ‘대혈(大穴)’이라고도 불렸지만 지금은 신라 말 고승인 도선국사가 득도한 곳이라고 해서 도선굴이라 불린다. 이 굴은 야은 길재가 도학을 공부하던 곳이라고도 하는데, 몇 해 전 여름철에 왔을 때 굴 내부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햇볕으로 나가기 싫었고 책만 펼쳐도 공부가 절로 될 듯했다. 굴은 득도의 수행처이기도 했지만 임진왜란 때는 백성들이 목숨을 보전한 피난처이기도 했다. 구전에 따르면 근처 백성들이 칡넝쿨을 잡고 기어 올라와 피신했는데 이곳에 모여든 피난민의 숫자가 1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굴의 규모는 길이 7.2m에 높이 4.5m, 너비 4.8m 정도로 아닌 게 아니라 100명 정도는 수용할 만했다. 그 옛날 길이 없어 칡넝쿨을 붙들고 올라갔다는 굴까지는 돌을 쪼아 만든 계단에 쇠사슬 난간이 설치된 길이 나 있다. 이 길은 일제가 1937년 조성한 것이다.

도선굴을 나와 현월봉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계단 난간에는 ‘할딱고개’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그 가파름을 설명하고 있다.

할딱고개를 지나 송전탑으로 오르는 길에 ‘딱, 딱’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딱따구리가 있는 게 확실해 걸음을 멈추고 서서 주위를 살폈더니, 등산로 아래 30m쯤 떨어진 나무에 오색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를 쪼고 있다. 한여름 나뭇잎이 무성할 때였으면 이 새를 볼 수 없었겠지만 낙엽이 진 앙상한 나뭇가지는 겨울 진객을 가려주지 못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으나 액정에서 새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확대하면 새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삭제하지 않고 다시 산을 올랐다.

송전탑을 지나자 오르막이 끝나고 산길은 평탄해졌다.


안 해설사는 “현월봉 위의 통신부대에는 1970년대까지 미군들이 주둔해 정상 부근 평지인 성안마을에 이들을 상대로 한 식당까지 있었다”며 “하지만 1970년대 들어 통신시설이 무인화되고 민간인들도 산 아래로 내려가면서 성안은 사람이 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한결 편해진 산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니 드디어 정상인 현월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인 현월봉의 높이는 해발 976.5m. 재미있는 점은 정상을 표시하는 표지석이 두 개 있다는 것. 아래에 있는 것은 예전에 있던 표지석을 옮겨놓은 것이고 정상에 있는 것은 새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금오산은 주봉인 현월봉(懸月峯)과 약사봉(藥師峰), 영남8경 중 하나인 보봉(普峰)으로 이뤄져 있는데 현월봉 옆의 약사봉 바로 아래 절벽에는 2칸짜리 약사암이 덩그러니 걸려 있다. 좀 더 머물며 발아래 펼쳐진 경치를 살펴보고 싶었지만 벌써 해는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산 아래로 향했다.

<글·사진(구미)=우현석 객원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