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수필마당] 추억 만들기

2019-12-04 (수) 김옥교 시인
크게 작게
지난 휴일을 맞아 우리 아홉 식구가 함께 레잌 타호를 다녀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여름마다 자주 가는 곳이었는데 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가정을 갖게 되자 어느때부터인가 함께 모여 여행길에 나선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딸네 다섯 식구와 막내 아들 내외와 그들의 강아지 두마리와 함께였다. 방이 다섯개에 목욕탕도 몇개 있는 제법 큰집이어서 우리 모두가 지내기에 넉넉했다. 집은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아주 쾌적했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인생길에서 추억을 만드는 길인지도 모른다. 어느 때는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렇지 못한 때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들이 채색이 되고 별로 나쁜 기억은 생각나지 않고 좋은 기억은 그리움을 부른다.


음식을 몇가지 집에서 해왔기 때문에 아침만 양식으로 만들고 나자 별로 어려움도 없었다. 내가 다섯시 정도 일어나면 아이들은 여덟시나 되어야 일어나니까 난 늘 아침 시간이 넉넉하다. 혼자 드넓은 거실에서 커피도 마시고 기도도 드리고 찬송도 부른다.

폐부 깊숙히 들어오는 차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짧은 산책도 했다. 이런 산속에 커다란 저택들이 드문드문 있는 것이 새롭게 보였다. 저녁엔 남편을 위해 카지노도 갔다. 매일처럼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재미없는 인생을 사는 지들 대디를 위로하기 위해 온 여행이니까 그가 그동안 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았다.

사실 핸디캡을 데리고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니다. 우선 휠체어를 가지고 다녀야 하고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이나 무게나 만만치 않고, 사람이 차에 타고 내릴 때마다 일일히 손이 가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두사람이 도와 줘야 한다.

나는 아이들이 지 대디를 도와줄 때마다 정성과 사랑으로 하는 것을 보며 나는 늘 의무감으로 하는 것과 대조가 되어 역시 피를 나눈 사랑이야말로 진실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물론 나는 매일 같이 사는 사람이며 저희들은 가끔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를 수 밖에 없다.

남편은 오랫만에 밖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니까 좀 기분이 풀리는것 같았다. 사람이 걷지 못하고 운전도 못하게 되면 더구나 미국 생활에서는 죽은 목숨과 다를 게 없다. 이제 자유라고는 누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어느때 남편은 낮잠을 잔다. 웅크리고 소파 한쪽에서 자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다. 한때는 그도 세상을 주름잡고 다닐 때가 있었다. 이십년 전 그가 은퇴를 하고 우리가 함께 세상이 좁다하고 돌아다닐 때, 그때는 돈도 있었고 시간도 많아서 거리낄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말하자면 돈과 힘과 시간이 있으니까 정말 겁날 것이 없었다. 일년에 두세번 크루즈도 가고, 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즉시 비행기 표를 예약해 떠나면 되었다.

가끔 딸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내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딸애는 금방 알아차리고 “엄마!왜그래요? ”하고 묻는다.

나는 곧 “사는게 재미가 없어서,이제는 하루하루 늙어가고 돈도 자꾸 줄어들고 네 아빠는 그꼴이니까 내가 신나는게 뭐가 있겠니?”하면 딸애는 “엄마! 돈 걱정마! 우리가 있잖아요? 엄마는 엄마 건강만 챙기면 돼요”라고 말해주어서 말이라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정말 자식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딸과 며느리의 차이가 있다면 딸은 엄마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안다. 나는 두 명의 며느리가 다 착해서 생각해 보면 복많은 노인이다. 이제 곧 추수 감사절이 다가온다. 오늘 교회에서 감사한 것에 대해 적어 보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해서 다시 한번 감사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가끔 친구들에게 우리가 지금 빈손으로 미국에 와서 지금 이만큼 살게 된 것을 감사해야 된다고 강조할 때가 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이 라스모어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더욱 감사한다. 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이 캘리포니아 만큼 기후 좋고 아름다운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난 날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된다. 돈 없고 아무 기댈 것 없던 이혼녀가 그것도 아이 둘을 데리고 갈바를 모를때 하나님은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고, 또 이 풍성한 가나안 땅인 미국에 우리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모두 다 잘 살게 해주셨다. 한세상 잘 살았고 늙어서는 또 이곳 라스모어에 오게 해주셨고 교회도 이곳에 만들게 해주셨고 너무나 훌륭한 우리 목사님도 만나게 해주셨다. 육신적인 것과 영적인 것 모든 것을 가지게 해주셨으니 우리 교회가 점점 더 자라는 교회로 만들어 주시고 있다. 이제 날마다 좋은 추억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앞으로의 내 생애는 좋은 추억 만들기를 하며 더 기쁘고 감사한 삶을 살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김옥교 시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