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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바다] 심리적 거리

2019-12-02 (월) SF 한문협 회원 김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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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만큼 왔~나’,’길 모퉁이 와았~다아. ’ 어린 손녀를 업은 그녀의 깍지낀 두 손이 등 아래에서 힘겹게 내려오자, 다시 아이를 받쳐 들던 그녀가 노래들 부르듯 장단에 맞춰 응수한다. 동네에 하나 있던 가게를 지나고, 골목길 세개를 지나고도 집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다시 묻는다. ‘어디만큼 와았~나아’. ‘여~얼 걸음 남았다아~’ 햇빛이 따갑게 내리던 날, 버스가 들어오지 않는 비포장 길.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들러 주사를 맞히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된 아이를 애써 달래 업고 길을 재촉하던 할머니. 걸으면서 일어나는 흙바람이 그녀의 고무신으로 들어와 먼지가 자욱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그녀의 등 위에서, 철부지 아이는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싸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햇살이 눈부셔 눈살을 찌푸리며 가늘게 눈을 떠 바라보던 하늘. 강렬한 태양빛이 온 세상 중에서도 그곳으로만 비춰지듯 뜨겁고, 구름은 무심히 한자리에서 구경하듯 말없이 바라보던 그 여름날.

오래간만에 단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며 문득 어린시절 그 여름을 떠올렸다. 현재로부터 얼마만큼의 '거리'에 그날이 있었을까? 시간으로 메겨진 거리는 그날이 얼마나 오래전인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느끼는 거리는 바로 몇초 전의 일처럼 가까웠다. 눈을 들어 멀리 잿빛 하늘을 바라보는 사이, 건조함에 목말랐던 대지가 물기를 머금고 내뿜는 호흡에 흙내음이 코끝을 당기더니 이내 시려왔다. 그리움의 이름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비오는 하늘을 보며 수십년 전 어느 뜨거웠던 여름 날, 할머니의 등에서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집으로 가던 길을 재촉하던 그날의 나를 만나고 있었다. ‘어디만큼 왔~나’ 삶의 모퉁이들을 돌아 돌아 나는 어디를 향해 얼마만큼 가고 있는가?

심리학자 월터 미셀,니라 리버만, 야코프 트로트 등이 처음 주장한 용어인 '심리적 거리 이론(Psychological distance theory)'은 자신과 타인의 사회적 거리, 현재와 미래에 대한 시간적 거리, 나와 대상의 위치에 대한 공간적 거리, 예상과 실제에 대한 경험적 거리 사이의 간극을 말한다.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 대해 시간적 또는 사회적으로 느끼는 나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서로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에, 심리적 거리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그 상황을 해석하는 수준이 달라진다고 한다.

아주 먼 기억 속에 빛바랜 짧은 영상처럼 살아있던 유년의 기억은 시간적, 공간적 거리는 멀지만 그곳에 함께한 이와의 심리적 거리는 매우 가깝고 친밀 하기에 이후의 삶 속에서도 영향을 미치며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다시금 열 걸음이 되던 할머니의 노래는 지혜의 노래였다. ‘어디만큼 왔는가’ 스스로에게 물음은 삶 속에서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는 나침판과도 같았고, 종착지에 가기 전 만난 모퉁이들은 중간역과도 같았다. 그곳은 재충전과 점검이 필요함을 일깨우게 했다. 반면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에서조차 할머니의 등은 무의식적인 피난처였고, 혼자 숨어 울어도 들키지 않는 시간 터널속 공간이었다. 곧 도착하리란 길이 셀 수 없이 험한 길일지라도 그것을 열걸음으로 갈 수 있는 마법 같은 노래. 시간을 넘어 유년기부터 현재까지도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심리적 거리는 삶에 깊숙히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 속 이론들은 인간이 인간을 제대로 알고자 탐구하는 과정속에 나온 데이타의 산물이며, 이러한 연구가 삶 속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나를 그곳에 투영 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심리적 간격이 클때 사람들은 숲과 같이 큰 그림을 보고 대안을 찾게되고, 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나무를 보듯 세부사항과 방법에 집중하며 구체적인 사고를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세부적이면서도 까다로운 문제를 놓고 그 안에서 맴돌다 상황을 악화시키고 해결할 시기를 놓치지 않게 ‘해결해야 할 문제’와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늘릴 필요도 있고, 심리적 거리를 좁혀 구체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일들도 있을 것이다.

2019년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 12월. 나와 연결된 주변과의 심리적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관점의 주체일때는 보지 못했던 타인의 관점에서의 심리적 거리를 생각해 보게된다. 가장 친밀하다고 여기는 가족과 아이들, 또는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심리적 거리’로 인해 그들과의 관계를 숲으로 보지 못하고 나무로 보며 재촉하거나 오히려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지를, 또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 등, 어떠한 이유에서건 심리적 거리가 멀어져 소원하게 된 지인이나 집중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좀 더 ‘심리적 거리’를 좁혀 다가 가야 할 부분은 없는지를. 조급함이 불러오는 두려움과 불만은 내가 좁혀 놓거나 늘려 놓았던 ‘심리적 거리’이기에 그것은 타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나의 문제임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반칠환 작가의 시집 <웃음의 힘>에 실린 '새해 첫 기적'이라는 시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뱅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공백> 바위는 앉은채로 도착해 있었다.’

새해가 다가온다. 작가의 시에서 ‘바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바위’는 앉은 채로 이미 매일 매일 ‘새 해’를 살고 있었다. 나의 새해는 그 해 ‘바위’가 앉은채로 도착해 맞이한 바로 그 날. 오늘의 ‘새 해’이다. 다시 오지 않는 오늘과 내일의 태양과의 ‘심리적 거리’가 오늘 내 삶을 얼마나 농밀하게 살아야 할지를 속삭인다.

<SF 한문협 회원 김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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