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민족을 묻는다면 단연 유대인을 꼽게 된다. 지리상의 발견, 상대성 원리, 소아마비 백신 개발, 국제 금융의 시작, 이외에도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들 뒤에 유대인이 있었다.지금도 시대를 앞서가는 창의성으로 각 분야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 중에 유대인이 많다. AD 70년,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 약 2천년간 나라도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난민으로 살았던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톨스토이는 유대인을 가리켜, “하늘에서 불멸의 불을 가지고 내려와 온 세상을 밝힌 성결한 민족”이라며, “유대인은 문명의 선구자이다. 현대 유럽보다 무지함이 더 죄악시되었던 곳이고 대 팔레스타인이다”라고 했다. 과연 유대인을 특별하게 만든 이런 차별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토라...‘율법’이라는 뜻으로 모세 5경을 지칭한다. 유대인에게 토라는 단지 종교 경전이 아니다. 우주와 인류의 기원, 국가의 형성과정을 담은 역사서이자, 국민이 따라야할 생활 지침을 담은 법전이다. 부와 권력이 우상화 되고 쾌락의 위력 앞에 윤리가 맥을 못추던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행복하고 잘사는 나라를 실현하기 위한좋은 통치법이 절실했다. 이스라엘이 그 시범 국가가 되었고, 토라가 밝히는 부국 강병의 길은 지도자와 백성이 거룩과 선을 행하고 그 땅에서 악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다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원리인 듯 보이나,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 원리에 입각해 흥망성쇠가 반복되었다. 사실, 강성했던 제국들의 말기에 권력의 부패, 종교적 타락, 도덕성 상실 등이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었던 것을 보면, 이는 세계사가 입증하는 보편적 원리인 듯 싶다.
토라의 마지막 책, 신명기…“쉐마(들으라), 이스라엘!” 광야 차세대를 향한 모세의 연설이다. 약속의 땅을 향해 부푼 꿈을 안고 애굽을 떠났던 부모세대…위기의 여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기적의 현장을 체험했다. 그러나 꿈에도 그리던 목적지 앞에서 만만치 않은 적의 상황을 목격한 순간, 고비를 헤치고 나온 승리의 행적이 무색하게 맥없이 주저 앉아 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광야에 묻혔다. 한 세대가 흘러 다시 약속의 땅 목전에 선 이스라엘…모세는 광야 초기 역사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부국 강병의 원리가 무엇인지 다시 주지시킨다.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가 보이는 물질세계를 지배한다고.거룩, 선, 정의를 행하면 재물과 번영이 따라온다고. 순서가 뒤집혀 물질을 숭배하고 쾌락과 불의를 좇으면 결국 망하게 된다고…
우리는 그 어느때 보다도 돈, 권력, 쾌락에 대한 욕구가 고조된 시기를 살아간다. 인류 역사상 돈, 권력, 쾌락이 관심의 변두리로 밀려난 적은 없었지만, 요즘처럼 소셜 미디어의 지지를 받으며 당당하게 정체를 드러낸 시기는 없었던 듯하다. 보이지않는 것들에 대한 존재감은 흐려지고 보이는 세계가 과도하게 부각되고 있다. 절대적 가치의 위상이 흔들린다. 선악의 판단보다 대중의 지지와 공감도가 도덕의 기준이 되어간다. 기술의 개발로 악의 소굴에 대한 장소적 개념이 무의미 해졌고, 휴대폰 하나로 어디서나 손쉽게 타락의 향연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가 절박하게 행복을 찾아 허우적거리는데 정작 행복에서 더멀리 떠내려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쉐마, 이스라엘!” 쉐마는 ‘들으라’는 뜻이지만, 들어야 할 본문을 대변하는 단어다.
부모세대의 실패를 알고 있는 모세, 연설을 듣는 자녀세대가 미래에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도 알고 있는 모세… 그의 어조가 상당히 격앙되어 있고, 그 목소리가 퍽 애달프다. 그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오고 오는 세대가 토라의 정신을 붙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오래지 않아 ‘쉐마’를 잊어버리는 이스라엘… 대내외적인 격동을 겪으며 혹독한 대가를 치렀고, 뼈아픈 고난의 역사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쉐마의 무게를 깨닫게 되었다. 이제 유대인들은 말하기 시작할 때부터 토라를 배우고, 하루에 두 번씩 평생 쉐마를 암송한다. 이렇게 교육이 삶 (평생 교육)이요, 삶이 교육 (전인교육)이 된 것이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방황하는 현세대가 귀 기울여야할 것이 무엇일까. 나라와 시대는 달라도 변하지 않는 진리, 쉐마가 아닐까. 거룩과 선을 행하고, 악을 거절하며, 삶을 다스려 행복을 누릴 줄 알고, 주변을 둘러보아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세대…쉐마의 유대적 양식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 우리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쉐마에 응답하는 이 세대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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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