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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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또 하나의 시선

2019-11-16 (토) 안세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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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어느 날 경제원론 강의를 듣고 있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경제원론에 종속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경제학을 계속해서 전공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어설픈 일본어로 질문을 했었다. “교수님, 수요와 공급의 곡선만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모든 가격변동을 설명할 수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경제원론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근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경제학을 전공하고자 한 학생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고, 다른 경제학 관련 수업을 수강하지 않았었기에 할 수 있는 ‘애송이’ 같은 질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주셨다. “너의 말이 맞다. 경제원론을 공부한다고 해서 주식시장에서 수익을 정확히 예상할 수 있다거나 다른 사람보다 더 이득을 본다거나 실질적으로 너의 통장의 잔고를 불려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너는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사회현상을 해석함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는 또 다른 하나의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현재 월넛크릭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어느 날 수업을 끝내고 학생어머님이 감사의 쿠키를 주신 적이 있다. 처음엔 사양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주신 쿠키를 감사히 받았다. 그 모습을 본 학생 한명이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한국 사람들은 무언가를 받을 때 왜 처음에는 다 거절을 해요? 그런데 결국에는 다 받을 거잖아요. 처음부터 ‘땡큐’ 하고 받으면 안되나요?” 그 말을 듣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또 기특하기도 했다. 그저 지나칠 수도 있는 이 상황을 그 학생은 유심히 지켜보았고, 나의 반응에 대해 자신이 생활하고 있는 미국문화와는 다른 한국문화에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교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단순히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배움으로 해서 또 하나의 세상, 또 하나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내가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안세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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