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가을만찬
2019-11-15 (금)
방무심/프리몬트
늘 집에 있게 되니 일요일이면 즐기던 늦잠 자는 습관도 먼 옛날이 되었다. 이른 아침 걸려 온 전화에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온다. 오랫동안 친근하게 지내는 분이 저녁 식사로 ‘석화구이’를 하자는 제안을 한다. 석화? 잠시 생각을 하려니 대뜸 ‘굴’이라 해서 이곳에 오래 살아가니 흔한 말도 잊히는 듯싶다. 어렸을 적에는 해태(海苔)라는 말을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는데 그것이 ‘김’ 인 줄은 한참 후에나 알았다. 해마다 찬 바람이 부는 초겨울에 김장할 때면 석화구이가 생각나 입안에 침이 고인다. 일요일 아침에 타인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러 맥카페에 들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느긋하게 머물다 와서 모처럼 바빠진 일요일 오후를 맞는다. 가는 길은 쉽지 않아도 그 친구 집을 떠오르면 옆지기의 눈썰미(?)로 가꾸어 놓은 집 안팎에 깔끔한 인상을 받곤 하였기에 가을 소풍 가는 기분으로 떠났다. 며칠 사이 휘몰아쳤던 세찬 바람에 무리 지어 구르는 낙엽은 차도와 인도를 뒤덮으며 한 해를 마감해 가는 쓸쓸함을 더해준다.
오늘 같은 화창한 날에 편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는 동내를 한 바퀴 돌아 들어섰다. 벌써 뒤뜰에서는 숯불마저 익어가는 듯 빨간 불꽃이 ‘틱틱’ 소리를 내어가며 싫지 않은 숯 냄새를 전해온다. 적당히 어우러진 나무와 함께 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하얀 테이블보로 꾸며진 식탁에는 정갈히 준비해 놓은 만찬과 흰 목장갑이 기다리고 있다. 석쇠 위에 익어가는 굴의 냄새와 은은히 휘감아 오르는 연기가 가을의 만찬에 양념을 더한 듯하여 그 분위기에 마냥 머무르고 싶었다. 땅거미가 갓 드리워진 어둑함, 잘 정돈된 뒤뜰, 정성껏 차려놓은 음식과 함께 곁들인 와인잔을 허공에 부딪치며 Cheers! 를 외친다.
고즈넉한 저녁 분위기에 맞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어느덧 아홉 점 반을 가리키니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떠난다. 집으로 오면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의 환경과 비교되어 청소라도 자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늦가을 저녁, 멋진 분위기에 취한 손님이 되었고 맛있는 저녁 식사로 초대해 주신 친구분과 함께한 분에게도 고맙습니다.
<방무심/프리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