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벼랑으로 내몰리는 드리머들

2019-11-14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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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머들이 기대를 걸었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별 희망적 신호를 보여주지 않았다. 어릴 때 입국한 불체 청년들, ‘드리머’의 추방을 유예시킨 오바마의 행정명령 다카(DACA)의 미래는 12일 연방대법원 심리 후 더욱 암울하게 느껴진다.

센서스의 시민권 질문 판결에서 대법원의 새 스윙 보트로 떠오른 후 최선의 희망으로 꼽혀온 로버츠마저도 트럼프 행정부 쪽으로 기울며 다카 폐지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듯해서다. 그건 한인자녀 7,000명을 포함한 70만 드리머들이 점점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의미다.

다카 재판에서 대법원의 논점은 크게 두 가지다 :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다카 폐지 결정을 심리할 권한을 가졌는가. 행정부가 다카를 폐지시킨 방식은 합법적인가.


트럼프가 전임 대통령의 행정명령인 다카를 폐지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행정부의 다카 폐지 결정이 올바른 절차로 진행되었는가의 여부다. 현행 연방법에 의하면 행정부는 재량권으로 정책변경을 추진할 때, (특히 다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의존하고 있는 정책을 폐지할 경우) 메모를 통해 정책 변경의 정당성에 대한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폐지 결정을 발표하면서 폐지 이유를 ‘다카는 불법’이라고만 적었고 2018년 두 번째 메모를 통해 “모든 계급, 모든 부류 외국인에 대한 이민법의 명확하고, 일관성 있는 집행에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중요성”에 관해 추가했을 뿐이다.

다카 지지자들에게 승소를 안겨준 하급법원들은 다카 폐지 결정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설명이 다카가 나쁜 정책이라는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 등 부적절했다고 판결했다.

행정부는 다카 폐지 결정이 법원의 영역이 아닌 행정부의 재량권에 속하고, 폐지 이유도 두 차례 메모를 통해 충분히 밝혔으며, 다카 자체가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원고인 다카 지지 측은 폐지 결정이 정책 판단이 아닌 ‘불법’이라는 법적 판단에 근거했으므로 법원의 심리 대상이고, 다카는 추방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되는 ‘합법적 프로그램’이며, 다카 폐지는 적절하고 충분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아 연방 행정절차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법원의 심리는 보수와 진보 이념에 따른 양분이 확연해 보였다. 진보 대법관들은 다카 폐지가 드리머들과 그들이 속한 커뮤니티, 기업들과 나아가선 경제 전반에 끼칠 심각한 영향을 강조하며 행정부 절차의 정당성에 회의를 표했고, 보수 대법관들은 법원의 심리 권한에서 다카의 불법성에 이르기까지 행정부 입장에 동조를 시사하는 질문들을 주로 던졌다.

그러나 닐 고서치 등 일부 보수파가 행정부의 설명 부족 등 부적절한 절차에 대한 우려를 표명, 다카 지지 측에 다시 일말의 희망을 주기도 했다.


모두의 눈길이 쏠린 것은 여전히 로버츠의 선택이고 심리 때의 질문만으로는 결과를 속단하기 힘들다고 전제한 로욜라 법대의 제시카 레빈슨 교수는 “연방 행정절차법이 유효함을 알려주고 트럼프 행정부의 고삐를 잡는 것이 그에게 달려있다”고 지적한다.

대법원에서의 다카 운명을 온라인 해설매체 ‘복스’는 3가지 시나리오로 예상한다.

첫째, 하급심의 판결을 재확인해주는 다카 지지 측의 승소다. 대법원의 강경보수 분위기로 보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드리머들에겐 시간을 벌어주는 최선의 결과이지만 결국 다카를 구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판결 후 행정부가 적절한 설명이 담긴 메모를 제시해 다카를 폐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부가 메모를 미루는 동안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다카는 살아남을 수 있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다카 폐지 결정의 이유 설명이 충분하고 정당하다는 판결이다. 다카 지지 측의 패배이지만 다카 자체의 합법성 문제는 피한다는 사실이 드리머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엘레나 케이건 등 일부 진보 대법관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다카가 즉각 폐지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나 이처럼 ‘좁은(narrow)‘ 패배는 차기 대통령에게 다카 재개를 용이하게 해 준다.

셋째, ‘다카는 불법’이라는 의견에 다수 대법관들이 동의하는 경우로 다카의 영구적 패배를 뜻 한다. 만약 대법원이 이 케이스를 절차상 문제가 아닌 다카 자체의 합법성 여부의 문제로 접근한다면 5명 보수 대법관의 의견 일치로 다카가 불법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의 다카 폐지를 허용할 뿐 아니라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되어도 다카 재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UC샌프란시스코 약대에 재학 중인 한인 드리머 최민구씨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졸업할 무렵인 내년 6월로 예상되는 대법원 판결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지워버릴 수 있다”며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할 미래를 불안해했다.

미국만을 ‘내 나라’로 알고 열심히 살아온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을 파괴하는 선택”을 재고하는 보수 대법관이 한 명쯤 있기를…다시 기대한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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