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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thing I can do because
Amida has already done it all for me.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미타불이 나를 위해 다 해 놓으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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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근본 원리인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체험적으로 고백한 히로유키 이즈끼의 결론.
아무래도 ‘내 힘’으론 안되며, 결국 ‘다른 힘’에
의존함으로서 해탈에 이른다는 마침표를 찍은
Hiroyuki Itsuki. 그리고, 그 놀라운 역사(役事)의
중앙엔 아미타불이 계시다는 것까지, “Tariki”라는
책 속에서 밝히고 있네요.[타리키 =타력(他力)]
“It‘s not ’Self Power‘ but ’Other Power‘
that truly liberates.” 진실로 자유케 하는 건
자력이 아니요 타력이랍니다. 정토(淨土) 신앙을
지극 정성 다져온 일본 불자들 또한 말합니다.
“It’s not ‘Jiriki’[자력(自力)] but ‘Tariki’[타력]!”
진정한 해탈(解脫)로 이끄는 건 오로지 타리키!
알고 보면 쉽죠. 오랜 세월 가부좌 틀고 앉아
선방(禪房)에서 죽칠 필요가 없답니다. 많고도
많아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알음알이 공부도
사실 불필요한 시간 낭비. 애써 자력(自力)으로
뭔가 이룬다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발상이란 것.
무진 노력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불자(佛子)라
한들, ”나무 아미타불!“이란 염불(念佛) 한 방엔
모두 꼼짝 못한다는 실로 놀라운 가르침.
혹시, 무슨 사이비(似而非)나 이단(異端) 불교를
말하는 게 아니냐 의심하신다면, 그저 한 분
이름만 빌어 ”나무 아미타불!“의 원력(願力)을
증거합니다. 한민족 불교의 거대한 정점(頂點)이라
할 수 있는 원효대사의 범부/중생 구제 결론이
바로 ”나무 아미타불!“ 자력(自力)이 아니요,
마침내 타력(他力)이란 걸 쉽고 자상하게
가르치던 원효(元曉)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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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thing I can do because
Amida has already done it all for me.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미타불이 나를 위해 다 해 놓으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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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ita Buddha”의 뜻은 무량광불(無量光佛)
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 ”무한한 빛이요 무한한
생명이신“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고, 그 이름만
일념(一念)으로 외우다가 마침내 임종(臨終) 후,
극락(極樂) 왕생(往生)! 지극한 복락의 깨끗한
땅으로 돌아가 태어나서, 내내 지복을 누린다는
복음(福音).
‘극락(極樂)’은 문자 그대로 ‘Ultimate Bliss’ 즉,
‘궁극적 지복(至福)’이요 더 할 나위 없는 행복을
가리키는 말. 산스크리트어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수카바티(sukh?vat?). 영어로 의미를 풀자면
‘full of joy’ 내지 ‘blissful’ 정도의 뜻. 더러운
예토(穢土)인 이승을 떠나 그지없이 깨끗한
정토(淨土)로 극락 왕생(往生)! 과연 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법장 비구 시절,
아미타불이 극락정토의 부처님이 되기 전,
이미 그렇게 본원(本願)을 세웠기 때문.
[무량수경, 제 18원: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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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is nothing I can do because
Amida has already done it all for me.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아미타불이 나를 위해 다 해 놓으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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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고 보면, 다 은혜(恩惠)일 뿐! 자기 힘으로
애써 정진한다 해도 결국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
덕분에 열반에 이르고 해탈도 이루는 것. ‘새 하늘
새 땅’에 거하고 ‘새 예루살렘’에 든다는 소망
또한 아미타불 신앙의 극락정토(極樂淨土)와
크게 다를 바 없더라?
다만, 아미타불을 믿고(信) 극락을 소망(願)하는
것들의 바탕엔 자비를 실천(行)하라는 교훈이
숨어 있음에 유의합니다. ‘극락정토’는 그저
가르침의 방편일 뿐! 자성미타(自性彌陀)요,
유심정토(唯心淨土)라. 죽은 후 ‘나중/저기’의
극락이 아니라, ‘지금/여기’로의 왕생(往生)이
바로 ‘극락(極樂)’의 참된 의미가 아닐까. 믿음과
소망 이전, 사랑이 곧 극락임을 깨닫는 순간,
곧바로 “극락!”입니다.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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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박사 / 영어서원 백운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