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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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나의 미국생활

2019-10-31 (목) 엄영미 (SF갓스이미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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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6월 낯선 미국땅을 밟았다. 11년의 아나운서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이라는 새로운 장을 향해 기대와 설레임으로 이곳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어릴 때부터 나의 꿈은 아나운서였고 미국 가서 사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가끔은 고무신을 신기도 했던 그 시절, 미국에 살고 계셨던 이모가 우리집에 오셨다. 이모는 미국 생활을 너무나 자랑스러워 하셨고 나는 그 이모의 모습이 매우 부러웠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나도 미국으로 시집가서 이모처럼 살아야지…..

초등학교 5학년 때 TV를 통해 본 ‘누가 누가 잘하나“를 진행하던 아나운서가 무척 부러웠다. 난 그때부터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누가 누가 잘하나, 어린이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자! 어느 학교 누구에요? 오늘 어떤 노래를 불러 줄 거에요?“ 하며 줄 세워 노래를 시켰고, 모아논 나의 학용품을 출연한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난 대학 졸업 후 아나운서가 되었다. 어릴 때 가졌던 부러움은 꿈을 가지게 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나는 그 두 가지의 꿈을 완벽히 이루었다.

그러나 대망의 꿈을 갖고 도착한 미국은 나의 환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이곳에서 다시 시작한 한인방송국의 방송생활은 나의 대학방송 시절보다 더 열악한 환경이었고, 전문방송인이 아니라도 청취자들은 그것을 즐겨 듣고 있었다. 한국에서 갖고 온 파티복과 수상스키복은 20여년간 내 옷장 속에 고이 보관돼 있다가 얼마 전 옷장 정리와 함께 사라졌다. 나의 미국생활은 영화에서 본 그런 파티도 없었고, 주말마다 제트스키를 타러 다녔던 그런 취미생활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했던 모든 것이 더 이상 미국에서는 없었다. 적어도 나의 미국생활을 그랬다. 그래서 이 미국에 적응하는데 적어도 10년은 걸렸다. 그 사이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내 아이들은 어느새 멋진 청년과 숙녀가 되어 있다.


이제 오늘을 시작으로 기대와 정반대로 출발한 나의 미국생활을 비롯해 여성으로서의 삶을 이 지면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독자들과 공감과 소통을 나누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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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영미씨는 부산 MBC아나운서, SF 라디오서울 아나운서, 재능교육 원장으로 일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개혁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현재는 청소년문화예술선교단체인 갓스이미지 SF지부팀 단장을 맡고 있다.

<엄영미 (SF갓스이미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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