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생각나는 분
2019-10-30 (수)
이현희 (기모치 소셜워커)
그 할아버지는 제가 일하는 지역봉사센터에 도움 받으러 오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길에 두 시간짜리 무료 주차를 하고 두 시간마다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려고 나갑니다. 사무실로 돌아올 때 길에서 자주 뵙다가 한인 할아버지로 보여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드리다가 몇 마디씩 더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분이 무단횡단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됐습니다. 그분은 그 부근에 사시는데 저희 시니어센터에 점심을 드시러 매일 걸어가시다가 신호등에서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지 않고 다른 길로 가다가 지나는 차가 없는 것 같으면 시니어센터 앞에서 무단횡단을 해서 바로 들어가셨던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무단횡단을 하려다가 저와 딱 마주쳤을 때 인사를 드리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이렇게 무단횡단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쩌시려고요?” 할아버지는 “그럼 그냥 가는 거지 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안되시고요. 또 만약에 사고가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상대 운전자의 인생은 얼마나 힘들겠어요?”라고 제가 말씀드리니까 할아버지는 “아! 그 생각은 안 해봤는데 그렇기도 하겠네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하시고 건널목으로 걸어가셨습니다.
그 이후에 제가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다가 신호등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드리면 할아버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거의 아흔살이 다 되신 분이셨는데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저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고 바로 고치시는 것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성품이 있으셨기에 그러셨던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가끔 그 신호등을 지날 때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그분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잘 모르지만 고상한 삶을 사셨으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그분처럼 더 세월이 지나도 생각이 굳어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마음이 열려 있으며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며 선한 영향을 끼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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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씨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골든게이트 침례신학대학원 기독교교육학을 전공했고 한인교회 사모, 한국학교 교장,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에 있는 기모치(Kimochi)의 소셜워커로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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