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지만 거의가 보통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나보다 더 가진 게 많은 사람,명예를 가진 사람,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했지만 이제는 별로 부러울 것이 없다.
나도 한때는 돈도 많이 가져보고, 남들이 예쁘다고 칭찬도 받아보고, 재주가 많다고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제 나이가 팔십쯤 살다보면 모든게 시들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건강만이 제일 감사할 뿐이다.
내 남편도 한때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미국 굴지의 회사에서 중견 간부로 일생을 엘리트로 살던 사람이었다. 상당한 독서가였기 때문에 박식하고 부지런하고, 대우 받는 남편에 대우 받는 아빠였다. 주말에는 언제나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도서관에 가고 막내 아들애가 운동 시합을 하는 날이면 꼭 쫓아가서 심판관 노릇도 했다.
생각해 보면 지난 이십년 간은 남편이 은퇴하고 처음으로 우리가 물질에서도 해방이 되고, 아이들도 다 집을 떠나 우리만의 시간을 갖고, 이 세상의 유명하다는 곳은 두루 다 찾아다녔다. 한국에 가서도 삼년 간을 살았다. 남편은 아직도 한국에서 살던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한다. 새벽에 내가 일어나서 한국 방송을 틀려고 보면 어느 때는 이미 한국 채널이 켜있다. 그럴 때마다 아! 한국 생활이 그리웠구나! 그토록 그는 한국말도 잘 모르면서 한국방송을 보는 그 마음이 애틋해지곤 한다.
나는 말은 안하지만 그가 살아 생전 다시 한국 땅을 밟아 보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다. 가끔 그는 앤티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앤티는 내 큰 언니다. 우리 언니도 내 남편을 큰 은인으로 생각하고 늘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남편은 이제 잘 걷지를 못한다. 한동안 워커를 끌고 다니다가 이제는 휠체어 신세가 되었다. 아이들은 휠체어만 있으면 대디가 밖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집은 아랫층에 있어서 도저히 내 힘으로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층계를 올라갈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어느날부턴가 인생이 확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남편이 이런 상태가 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불쌍하고 딱하지만 내가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란 때가 되면 밥을 챙겨주고 샤워를 하고 나면 몸을 닦아주고 이것저것 심부름을 해주는 정도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해준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나는 아직 건강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슬슬 귀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예배때 목사님의 설교를 다 들을 수가 없다. 이게 슬픈 일이다.
지난 이십년 간을 나는 너무 편하게 살았다. 그동안 남편 밥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미식가이며 요리하는 것을 즐겨하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자기 스스로 꼼짝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게 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삶을 포기했다는 것과 자신의 품위를 더 이상 가지고 살지 못한다는 의미한다. 아직 그는 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는 상태다. 그것만도 고마운 일이다.
내가 매일 아침 기도하는 제목은 살면서 또 죽을 때까지 품위를 지키며 살다가 품위를 가지고 죽는 일이다. 내 이웃에 두명의 할머니가 살고 있는데 88세인 케이는 층계도 손잡이를 잡지 않고 뛰어서 올라갈 수 있는 건강을 지녔다. 또 한명은 캬롤인데 아직 팔십세는 아니지만 아직도 매일처럼 동네 화단을 가꾸며 산다. 약간 뚱뚱한 몸집의 그녀는 매일 한번씩은 화단을 둘러보며 사는 일이하루 일과가 되었다.
그녀들이나 우리 남편이나 보통 사람들이며 전형적인 미국의 모범 시민들이다. 케이는 요리도 잘하고 특히 쿠키를 잘만들어서 가끔 이웃들에게 나누어 준다. 이렇듯 하루하루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요란하게 성공했다는 유명 인사들은 거의다 한번씩은 감방에 가고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다.
그들은 아마 감방에서 그동안 왜 그리 아등바등하며 살았을까를 후회할 것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다 보통 사람들로 살면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 제일 대견하고 고맙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지금은 돈과 명예만을 쫓지 않고 비록 돈은 작게 벌어도 자신만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사는 추세라고 한다. 남이 뭐라해도 자신이 행복하다면 만사 오케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사는 라스모어도 한때는 다 잘나가던 사람들이었다. 주위에 박사들이 수두룩 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런 것을 부러워하고 그것에 목메어 사는 사람은 없다. 한두번 으시대봤자 다 이 안에서 살며 다 비슷한 것을 누리며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가 더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건강을 가지고 마지막 날까지 품위를 지니고 보통사람으로 살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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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