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젊어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재미삼아 해보는 질문임에도 어느 시절 하나를 답하기가 쉽지 않다. 각 시기마다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했던 아픔이 선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에 인생이 잿빛이 될 일이 뭐가 있었을까 싶다. 젊음의 시간은 꿈틀거리고 역동적이어서 실패하더라도 잠깐일 뿐, 인생 전체를 그 안에 묶어 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패의 여운이 조각배가 되어 젊음이 대양으로 나가는 길을 터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젊음을 현재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름다움이나 희망을 가까이 누리지 못하는 듯하다.
젊음의 달음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만난다. 경쟁에서 지면 어떡하지?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지? 시험에 낙방하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은 실패를 타고 오는 것만은 아니다. 자주 성공의 뒷덜미를 옥죄기도 한다. 다음에 이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지금 누리는 것들을 잃게 되면 어떡하지? 사회 전체를 덮고 있는 성공 신화의 그늘 아래 삶은 경쟁, 비교, 우월, 열등, 이겼다, 졌다 등의 잣대로 평가된다. 그리고 인생의 행복은 성공에 있다고 믿는다. 성공의 푯대를 향해 앞서고 뒤쳐지며 한바탕 달리다 잠시 서서 가쁜 숨을 고르고 지친 몸을 기대는 시점을 만난다. 인생 전반전이 마감되는 시기이다. 이맘 때가 되면, 학교와 사회가 알려주지 않은 새로운 인생 교훈을 알게 되는데, 그것은 성공과 행복이 나란히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따금 외형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내면의 공격으로 휘청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공이 판을 벌인 화려한 파티가 끝난 후, 바람에 흩날리는 쓰레기와 냄새나는 찌꺼기만 남은 파티의 실체를 보며 현기증을 느끼기도 한다.
‘하프타임’의 저자 밥 버포드는 케이블 TV 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한 탁월한 사업가였다. 인생 전반부에 화려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중,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을 직면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엄청난 장벽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실체, 부와 명예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인생의 본질적 질문을 마주하면서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어 뛸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아울러 전반전보다 더 나은 후반전을 위해 준비하고 계획하는 ‘하프타임’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전반부 인생의 주제가 ‘성공’이었다면 후반부 인생은 ‘의미있는 삶’으로 자리 매김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논지이다.
최근 몇 년간 나 역시 인생의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삶의 근거지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죽음의 그림자가 넓게 드리워진 검은 대륙. 질병이 울타리 안에 맴돌며 늘 손짓하는 땅. 문명의 혜택이 결핍되어 불편함이 일상인 생활공간. 무슨 생각을 하며 20여년을 그곳에서 살았을까? 아프리카 땅을 회복하고 그곳의 영혼들을 일으켜 세우려는 우주보다 크신 분의 부르심이 있었다. 그 땅을 밟고 그들을 보는 순간 그 부르심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인생 전반부가 시동이 걸렸다. 동시에 나와의 전쟁도 시작되었다. 환경의 위협과 내면의 유혹에 대항하는 전투적인 정신 무장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비교적 그 싸움에서 성공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열악한 땅에서 선한 일에 힘쓰며 나름 의미 있는 삶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또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길을 선택할 것이 분명한데, 왜 마음 한 켠에 공허함의 연기가 피어 올랐을까? 아마도 무엇을 했느냐 (what)보다 어떻게 했느냐(how)가 원인인 듯싶다. 살아내야 할 덕목들 (헌신, 희생, 절제)이 성품의 자연스러운 향기로 나오기 보다 의식적이고 고달픈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강한 의식이 다른 무엇을 강하게 움켜쥐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아름다운 덕목들이 성취해야 할 목표가 되었고 결국 성취한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의 예외 조항일 수는 없었다.
“다시 젊어 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80대 (30년 후)의 나에게 묻는다면, “하프타임~” 이라고 답하고 싶다. 성취로 인한 자신감은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다가오는 시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흔들 바위 위에 서있는 것 같은 시기. 그러나 달리던 경주를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과거의 점검과 미래의 방향 수정이 가능한 시기. 불안을 밀어내고 안정을 구축하기 위해 무리하게 무언가를 움켜쥐기 보다, 내면에서 울리는 세미한 음성을 따라, 영혼과의 따뜻한 공감에 눈맞추며 한 걸음씩 걸어가 보려 한다.
<
박주리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