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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막장 스토리

2019-10-15 (화)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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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이란 광부가 탄광의 맨 마지막 끝까지 들어간 곳을 뜻하는 단어다. 광부는 갱도의 가장 깊은 자리인 막장에서 곡괭이를 휘둘러서 석탄을 캐낸다고 한다. 그래서 갈 때까지 간 스토리의 드라마를 막장 드라마라고 부르나 보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나 보편된 도덕적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들이 지속적으로 연출된다. 눈뜨고는 볼 수 없는 기혼 남녀의 외도 장면, 뺨을 때리며 막말을 서슴지 않는 고부 관계, 그리고 뒤늦게 밝혀진 출생의 비밀로 인해 이뤄질 수 없는 사랑 등등 상식 밖의 요소들이 빠지면 시청률을 끌어내기가 어렵다. 그래서 애초에 막장 요소들을 먼저 구상해 놓아야 작가로서는 글을 써내려 가기가 훨씬 수월할 것이다.

평소 TV를 가까이 하지 않는 나는 그런 드라마의 요소들이 먼 나라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내가 속한 경계선 안에서는 주로 내가 택한 점잖은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에. 내 인간사는 그나마 조용할 것이라 자만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높은 시청률을 끌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공감 요소가 많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삶 곳곳에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사람을 가려서 사귀고 주변을 정돈한다고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지금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이 현세다.

나이, 성별, 인종을 불문하고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사는 역시 해 아래 새로울 것이 없다. 며칠 전 막장 싸움을 했다. 늘 감정을 뒤로하고 이성을 사용하도록 노력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수치스러운 흑역사였다. ‘나’라는 실존을 날 것으로 상대에게 보인 굴욕감이 내게 수치심을 안겨줬다. 내 상식으로는 막장 중의 막장이었으니 말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상대에게 괴성을 내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가 하면 울분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감정폭발을 제어하지 못한 내 자신을 용서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도 큰 숙제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내 실존의 막장에서 누군가는 곡괭이를 휘둘렀고 나는 폭발했다. 그리고 무너져 내렸다. 어쩌면 ‘나는 그러면 안돼’라는 자기 훈계와 ‘나는 그럴 리 없지’라는 자만이 이 수치심을 극대화시킨 것이 아닐까.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희로애락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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