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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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킨 위봉산성, 전통 지킨 한지마을

2019-10-11 (금) 글·사진 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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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재발견 시티투어버스 - 전북 완주

▶ 백제 때 세운 호국의 사찰 위봉사, 산성은 조선 궁중 사료 봉안한 곳
한지 명맥 잇는 공장 둘러보고 제조장서 공예품 만들기 체험도

나라 지킨 위봉산성, 전통 지킨 한지마을

관광객들이 위봉사 대웅전 앞에서 해설사 설명을 듣고 있다.

나라 지킨 위봉산성, 전통 지킨 한지마을

일제 수탈의 현장인 양곡창고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삼례문화예술촌.


나라 지킨 위봉산성, 전통 지킨 한지마을

관광객들이 술의 역사와 유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21일 오전 전주한옥마을에서 출발한 전북 완주군 시티투어버스는 전주고속버스터미널과 전주역 승강장에서 관광객을 태우고 첫 행선지인 소양면 위봉사로 향했다. 20여분쯤 달리자 차창 밖으로 송광사가 눈에 들어왔다. 백제 때 종남산 끝자락에 백련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건됐다가 통일신라 말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사찰이다.

박미선(41) 해설사는 “대웅전에 보물로 지정된 소조아미타불이 꽤 유명하다”며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고 소개했다. 이어 오성한옥마을이 스쳐갔다. 전주의 한옥마을이 조금은 상업화로 변했다면 이 마을은 고즈넉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숙박체험도 가능하고 사진 찍기 좋은 카페들이 즐비하다.


해설사 이야기를 듣는 동안 버스는 위봉사에 도착했다. 이날 행선지는 위봉사~위봉산성~대승한지마을~삼례문화예술촌~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을 둘러보는 코스다.

‘왕의 기억, 조선왕조의 시작과 끝’을 주제로 조선시대와 연관된 곳으로 짜였다. 추줄산 남쪽 기슭의 위봉사는 세 마리 봉황이 날고 있는 자리에 절을 짓고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백제 무왕 5년(604) 서암대사가 처음 창건했으며 신라 말 중창했다. 조선후기 위봉산성과 행궁을 지키는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사찰이었다. 동학혁명 당시 대웅전에 어진과 위패를 봉안해 위기를 모면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유사시 나라 위기 막은 위봉사·위봉산성

입구에 들어서자 일주문을 마주했다. 현판은 송하진 전북지사의 아버지인 강암 송성용 선생이 썼다.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봉서루 건물이 나온다. 특이한 것은 봉서루의 주춧돌과 기둥이다. 주춧돌에 위봉사라고 새긴 뒤 기둥으로 봉자를 눌러 놓았다. 주위의 산이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모양새여서 봉황이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대웅전 앞마당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수령이 500년이상 된 소나무가 서 있고 뒤편에 대웅전인 보광명전이 나온다. 보광명전 앞 계단에는 돌로 만들어진 원숭이 조형물 세 마리가 앙증맞게 앉아있다. 세 마리의 원숭이는 각각 입, 귀, 눈을 가리고 있다. 이는 묵언수행 중에 지켜야 할 원칙인 ‘말하지 말고, 듣지도 말고, 보지도 말아라’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위봉사 관광을 마친 버스는 5분쯤 거리의 위봉산성으로 향했다. 이 산성은 유사시 궁중의 중요 자료를 봉인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임진왜란 후 숙종이 태조어진과 조선왕조실록, 위패 등의 유실을 막기 위해 축조했다. 숙종 원년에 주민들을 동원해 7년 동안 쌓았다고 한다. 성곽을 둘러보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몰래 출입하도록 만든 비밀문도 발견할 수 있다. 산성의 문은 3개였지만 지금은 전주로 향하는 서문만 남아 있다. 성곽의 길이가 16㎞에 달해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다.

■천년의 맥 이어가는 대승한지마을


위봉산성에서 15분정도 달려 국내 유일의 대승한지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귀여운 버스가 반긴다. 단체 체험객을 위해 운행한다. 마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너른 마당과 한옥이다. 전통의 멋을 느낄 수 있고 보는 것만으로도 푸근함이 느껴진다. 한지 전시관인 승지관을 비롯해 생활사전시관, 제조장 등이 들어서 있다.

승지관은 전시실과 각종 한지 공예품을 파는 간이 판매소와 체험관이 설치돼 있다. 내부에는 대형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서 한지공예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한지 천년의 맥을 잇는 장인도 만날 수 있다.

박 해설사는 “과거 완주는 전주부에 속해 있어 전주한지로 이름 지어졌을 뿐 사실상 완주 소양이 한지의 발상지다”며 “한지의 원료인 닥나무 주산지이자 한때 전국 한지 공장의 80%가 몰려있었고 생산량의 70%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한지제조장에는 실제로 한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예전엔 수요가 많아 하루 1,000여장의 한지를 만들어 냈지만 지금은 장인 2명이 200여장정도 만든다고 한다. 제조장 옆에는 불을 떼고 닥나무를 삶아 껍질을 벗기는 야외작업장이 있다.

관광객들은 제조장에서 직접 한지 만들기 체험을 하며 잠시나마 선조의 숨결을 느꼈다. 체험관에서는 한지초지액자, 한지고무신, 손거울, 엽서 등 다양한 체험을 상시 진행한다. 저렴한 재료로 훌륭한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 수 있어 집에 돌아갈 때쯤이면 보람도 느낄 수 있다. 마을 안에는 한옥스테이가 자리해 있다. 8개의 방과 총 80여명을 수용하는 규모로 한지 이불을 비롯해 자연친화적인 공간으로 조성돼 힐링 장소로 제격이다.

■일제 수탈 공간서 재탄생한 삼례문화예술촌

점심을 먹고 난 뒤 버스는 만경강 상류 쪽으로 달렸다. 도착한 곳은 삼례문화예술촌이다. 일제강점기 곡물을 일본으로 수탈해 가기 위해 만든 양곡창고를 예술 공간으로 개조한 곳이다. 삼례지역은 군산, 익산, 김제와 더불어 양곡 수탈의 중심지였다. 1920년대 지은 창고 5동과 70~80년대에 지은 창고 2동이 있다. 2010년까지 약 100여년 가까이 창고로 사용되다가 전라선이 복선화돼 철로와 역사가 옮겨가면서 기능을 잃자 문화예술을 접목해 탈바꿈했다. 공간의 변신을 꾀했지만 건물 외벽과 내부는 옛 모습 그대로다.

박 해설사는 “오래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기 좋은 곳이다”며 “예술촌에서 소소한 볼거리로 추억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소개했다.

정문에 들어서자 건물 외관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매표소 옆에 있는 느린우체통은 1년 후에 우편물이 배달된다고 하니 가족, 친구, 연인들이 이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곳을 지나면 모모미술관이 나온다. 관광객들은 다양한 장르의 미술작품을 감상한 뒤 바로 옆 건물 문화카페 뜨레로 옮겨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디지털아트관 안쪽에는 동물 속에 사람의 감정과 표정을 표현한 조각 작품들이 놓여 있다. 4차 산업 관련 기술과 제품도 경험할 수 있다.

나만의 책을 만들고 책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면 책 체험공간인 책공방 북아트센터를 추천한다. 목가구를 통해 드러나는 선조들의 미감과 철학을 배우는 김상림목공소를 둘러본 뒤 상설공연장인 시어터애니로 이동해 클래식 공연을 끝으로 1시간가량 예술촌을 감상했다.

■꼭 한번 들러봐야 할 술테마박물관

대한민국술테마박물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술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완주에 오면 꼭 들러봐야 할 볼거리 여행지다. 2015년 10월 개관했으며 우리나라 술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모여 있다.

규모는 꽤 큰 편이다. 박물관이 위치한 구이면은 조선시대 명승 진묵대사가 곡차를 빚은 발원지로 알려진 수왕사가 있는 곳으로 5만5,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과거부터 현대까지 우리 술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내부는 수장형 유물 전시관, 술의 재료와 제조관, 역사와 문화관, 주점재현관 등 8개의 상설 전시실이 있다. 관람은 4층 역사관부터 1층으로 내려오면서 둘러보면 된다.

전시관 동선을 따라 올라가면 술병피라미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개관한 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2,015병의 술병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4층 역사관은 우리나라 전 지역의 대표하는 술부터 북한 술까지 모두 전시돼 있다. 지금은 볼 수 각 나라의 독특한 모양의 술병이 가득했다. 관람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오면 전시관 입구 쪽으로 입장객에 한해 우리나라 전통주를 시음할 수 있다. 이날은 탁주 한 잔이 제공돼 우리 술의 깊은 맛을 음미했다.

광주에서 온 김성진(62)씨는 “우리 술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풍류, 여유가 가득한 문화체험으로 술박물관을 새롭게 인식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하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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