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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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국어의 참 맛

2019-10-04 (금) 정성조 전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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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예(禮)와 효(孝)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과 그를 바탕으로 한, 신분제도 및 남녀차별의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특징이 우리말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또 지나치게 체면과 격식을 중시하는 사고가 아직까지도 남아 있어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 지거나 연령과 부(富)가 많아지면 권위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은 공손법을 잘 알지 못한다. 재외교포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들어보면,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난 뒤에 부모들은 어른들에게 말할 때는 ‘말 끝에 ’요‘를 붙이면 된다’ 라고 간단하게 가르친다. 그래서 아이들은 “할아버지 온다요”라고 말을 하게 되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민망한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말, 한국어의 참 맛은 공손법에 있다. 민주사상은 그 말씨에서 자란다. 서구인들이 귀족 정치를 하고 있을 무렵, 우리 신라에는 화백정치라는 만장일치의 민주정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 때 어떠한 말씨로 회의를 진행했을까? 상상해 보면 ‘해라’투 말씨가 아니었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합니다’투 말씨였을까?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게’나 ‘반말’을 썼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하오’ 말씨뿐이다. 반만년을 흘러온 ‘하오’투 말씨는 100년 전 까지도 잘 씌었었는데,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쇠퇴되었다. 100년 전 보통학교 1학년 「조선어 독본 제1과」에는 ‘소가 가오.’, ‘(물)고기가 노오’였다. ‘소가 간다’도 아니고 ‘소가 갑니다’도 아니었다. ‘소가 가오’라는 우리글에서 우리는 한국어의 참 맛, 언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가오’ 한 단어로, 서술문(가오), 의문문(가오?), 명령문(가오!)을 다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해라‘투 문장이 이 나라를 휩쓸었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정책은 「우민육성책」, 「천민양성책」이었다. 그들은 한국 고유의 정신을 없애기 위해서 ’하오‘투 말씨부터 없애야 했다. 일제강점기의 견지에서는 한국의 고유미(美)는 모두 미움의 대상이었다. 한국의 춤, 노래, 그림, 글, 말, 한국이름 모두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하오‘투 말씨의 쇠퇴와 더불어 한국의 전통적인 정신도 쇠잔하여 졌으며 한국어도 그 원형을 잃게 되었다.

한국어의 원형을 잃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국어사전의 동사와 형용사의 원형을머그오’, ‘안즈오’로 정하지 않고, ‘먹다’, ‘앉다’로 정한 데에 있다. ‘머그오’, ‘안즈오’는 순수한 국어이다. 이에 비하여 ‘먹다, ’앉다‘는 중국어 화(化)한 한문체 말씨이다. 입을 여러 모양으로 벌리거나 오므려 봐도 ’앉‘ 이라는 문자는 발음하여지지가 않는다. 발음할 수 없는 문자가 어떻게 우리 말, 한국어의 원형이 되었는지!

또 한 가지 큰 문제는 사전의 표제어를 ’해라‘체로 정한 결과, 모든 외국어를 ’해라‘체로 번역하게 되어 한국 사람들은 외국어를 ’해라‘체의 말로 잘못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 아주 큰 잘못이다. 요새 젊은이들이 부모에게 높임말을 쓰지 않으며 청춘 남녀가 교제를 할 때도 높임말을 쓰지 않는 것은 영어를 ’해라‘체의 말로 받아들인 데에서 시작된 현상이다. 만일 표제어를 으로 정하고 영어사전을 으로 번역해 놓았더라면 젊은이들은 영어를 으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영어는 결코 ’해라‘체의 말이 아니다. 영어는 평등한 말이며, 대화하는 상대방의 인권을 존중하는 말이다.

공손법은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로, 우리 말의 공손법이 상대방에 따라 15등급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으로 세분되어 있는 것은, 한국민족이 예의와 예절을 숭상한 데에서 온 것이다. 상대방을 대할 때, 예의만큼 값진 덕(德)이 없다. 은 오랜 세월에 걸쳐 발달해 온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하가 임금에게 ’아뢰오‘라고 말할 때의 그 존엄성의 극진함과 그 주체성의 당당함은 예절의 극치이다. 그러므로 사전의 표제어는 으로 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민족 전래의 자랑스러운 정신이 전해질 수 있으며 그 빼어남을 외국인들에게 과시할 수 있다.

우리 말의 말씨 중 인권을 존중하는 평등한 말씨는 한 가지뿐이다. 더구나 한국어의 말씨는 영어 보다 월등하게 고차원적인 것으로서, 영어는 그저 평등할 뿐이지만 한국어의 은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신분과 나이에 따라 적절하게 높이기도 하고 평등하게 하는 말씨이다. 온 세상의 말씨 중 ’하오‘ 말씨만큼 고매한 말씨는 없을 것이다. 일찍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의 나라‘, ’동양의 등불‘이라고 불리지 않았던가? 그 까닭이 ’하오‘ 말씨에 있었던 것이다. 갑오경장 때 노비제도가 폐지된 것과 같이 국어말씨의 낮춘 말(해라, 하게, 반말) 제도도 폐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첫걸음으로 우리 말의 기본이 될 자격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을 한국어의 대표형으로 정해야 한다고 거듭하여 주장한다.

<정성조 전직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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