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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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명절이 주는 고민

2019-09-20 (금) 허진옥(재정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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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맞는 명절은 점점 그 감성과 의미를 잃어간다. 미국에 와서 처음 몇년은 설날, 정월대보름부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복날도 챙겨가며 지인들과 모임을 가졌었는데 이제는 마켓이나 가야 명절이구나, 추석이구나, 보름이 다가오는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것을 보면 점점 명절문화에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올해 추석도 마트에서 송편 사서 지인들과 나누어 먹는 것에 만족했다. 그런데 고민은 우리 아이들이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네 아이들에게 가장 맛있는 떡은 무지개떡과 백설기, 그리고 비한인들도 좋아하는 꿀떡이다. 꿀떡인 줄 알고 송편을 먹은 아이들은 맛이 틀리다면서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꿀이 들어있지 않고 다른 소가 들어있어 배신감(?)이 든다며 투털됐다. 그래도 하나라도 먹이고 싶은 엄마 마음에 반강제로 두개씩 먹이면서 문득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것이 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제사를 거르는 가정이 많이 늘었다. 평생 모셔온 제사를 올해부터 지내지 않기로 하고 대신 가족들과 맛난 음식 해먹으며 며느리들과 커피타임을 가졌다는 어느 시어머니는 자식들이 힘들어해서 제사를 그만 지내게 됐지만 죄책감이 든다는 글을 SNS에 남겼다. 전통을 따르며 지키는 것이 중요한지, 세대와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해가는 것이 맞는지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여름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정서와 역사를 알려주고픈 마음에 인사동과 고궁을 찾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기대와 달리 우리의 뿌리보다 아이돌이나 캐릭터에 더 관심을 쏟았고, 전통음식보다 퓨전음식을 더 선호했다. 오랫동안 내려온 한국인의 문화를 이 아이들이 그리워하게 될까, 아이들의 후손의 후손까지 문화가 이어져 내려갈까 걱정이 들었다.

타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내 고향, 내 조국의 전통을 알려주고 싶은 내 마음과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우리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별수없다. 아이들 어릴 때 한끼라도 더 한국음식을 먹이는 수밖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찐한 된장찌개를 밥상에 올려야겠다.

<허진옥(재정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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