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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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슬픔은 남은 자들의 몫

2019-09-19 (목) 채영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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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새벽 시아버님이 계시는 중환자실로부터 가족분들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부부는 어머님을 모시고 황급히 택시를 잡아탔다. 그간 병세가 악화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이 있긴 했지만, 아무도 곁에 없는데 갑자기 떠나신다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빌며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은 먼저 4층 중환자실로 계단을 통해 뛰어올라갔고, 나는 어머님을 모시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매일 오전 오후 30분씩 2명에게만 면회를 엄격히 제한하던 중환자실 문을 밀고 들어간 순간 침대 옆에는 0으로 변한 숫자와 일직선, 기계경고음만 울리고 있었다. 간발의 차로 남편이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드릴 수 있었을 뿐 나와 어머님, 이후 달려온 다른 가족들은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 엎드려 망연자실 흐느꼈다. 특히 그토록 보고싶어하시던 손자는 안타깝게도 인천공항에서 병원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할아버지의 소식을 접해야 했다.

영안실로 모시고 난 후 빈소가 준비되는 동안 집에 들러 영정사진 및 여타 준비물을 챙기고 빈소로 돌아오니 준비된 상복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수도권을 관통한 태풍으로 엄청난 강풍이 불어닥친 오후 시간부터 공식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궂은 날씨 속에도 많은 조문객들이 오셨고 우리는 공손하고 경건하게 그분들을 맞았다. 일요일에는 입관 절차가 있었다. 목욕 후 곱게 수의를 차려입으시고 주무시는 듯 편안한 얼굴을 마주하며 꽃으로 가득한 관에 정성껏 모셨고 가족들마다 못다한 인사를 드리며 관을 태극기로 덮었다.

월요일 아침 발인 때에는 영정사진을 든 손자가 장손으로 맨앞에 섰고 운구 차량편으로 화장장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고별실을 거쳐 1시간정도 대기하다가 수골실로 가서 유골함을 인계받고 장지로 향했다. 해외동포들을 위해 조성된 망향의 동산 장지에 도착하니 아버님의 눈물이 흐르는 듯 하늘에서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최고의 예를 갖추어 하관과 안장 절차를 엄숙하게 잘 마쳤고, 사랑하는 손자가 할아버지를 위해 올려드리는 트럼펫 선율이 드넓은 묘역에 처연하게 울러퍼졌다.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3일 후 달라진 건 오랫동안 병환으로 고생하신 아버님이 더이상 세상에 안 계신다는 사실뿐이다. 이제는 고통없는 곳에서 평안히 쉬시기를. 내게는 큰 산 같았던, 존경하는 아버님의 모습과 음성이 그립고 그립다.

<채영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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