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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삶] 역행의 시대

2019-09-19 (목)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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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아직도 한 여름처럼 뜨거웠다. 온통 셀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뒤엉킨 트레비 분수를 벗어나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옛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던 그 대리석 계단을 추억하며 걸었다.

그런데 20년 전, 이 만남의 광장에 섰을 때의 감동은 사라졌다. 계단에 앉는 것조차 금하는 새 법령이 곧 시행된다고 했다. 이 느닷없는 새 문화재 보호법을 어기면 꽤 큰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대 마지막 낭만의 보루였던 로마에서마저 자유와 추억은 사라지고 규제와 속박이 목을 죄어오는 것 같았다.

역행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무너지고 있다. 포용과 용납 대신 배척과 증오, 구속와 반목의 세상으로 거꾸로 질주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정치와 환경일 것이다.


링컨의 나라, 미국도 우리가 알던 신사도의 대국에서 패거리 붕당정치판으로 변하고 있다. 날만 새면 총기사건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는데도 정략에 눈먼 정치가들은 권력만 좇는 비겁한 나라가 되었다. 처질의 나라, 영국도 유럽연합에서 탈퇴해 혼자 살겠다고 선도국의 위치를 포기한 채 우왕좌왕하고있다.

아마존 삼림이 한 달째 불탄다. 지구의 산소를 20%나 공급하고, 전세계 동식물의 10%가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는 근 1/5이 소실되었다. 대대적인 농지 개발을 부추기는 정권이 들어선 후 산불은 빈번해지고 열대 우림은 무차별 파괴되고 있다.

북극 온난화와 해빙은 더욱 심각하다. 2018년엔 북극 기온이 가장 높았다. 지난 20년전 보다 섭씨1.7도나 상승했는데 지구 전체 평균기온보다 2배이상 높은 수치다. 바로 북극 증폭현상이다. 즉, 빙하가 녹아 바다 면적이 넓어지면 햇빛을 더 흡수해 해수 온도가 올라가고 더 많은 얼음이 녹게 되는 악순환이다. 이 현상은 해류와 제트기류에 영향을 끼쳐 지구 전체의 이상 기온을 유발한다. 그럼에도 트럼프와 측근들은 정략에 매어 이 엄연한 과학적 사실마저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고 있다.

이런 이상기후가 인간의 폭정과 겹쳐 최악의 참상을 낳고있다. 40만이 죽고 인구의 절반이 넘는 1,200만이 난민으로 떠도는 시리아의 내전이 그 예이다. 아사드 정권의 폭정과 종교갈등이 직접 원인이지만, 환경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몰고온 시리아의 사상 최악의 가뭄을 주목한다. 오랜 가뭄으로 수백만 농민들이 황폐한 농지를 버리고 도시로 대이동하면서 부족간의 갈등이 대규모 내전으로 확산됐다고 보는 것이다.

환경문제는 뜻밖에 인종차별주의로 변질되고 있다. 소위 에코 파시즘(eco fascism)이다.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선 인종간 희생도 불사한다는 백인우월주의다. 그 파시즘이 얼마 전 뉴질랜드와 미국 엘파소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의 본질이었다. 범인들은 인구과잉으로 부터 환경을 보호하려 타 인종을 제거했다고 자백했다.

인공지능과 SNS로 상징되는 4차 산업 혁명도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갈지 불투명하다. SNS 소통은 범람하는데 인간들은 더욱 고독하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직업을 대체함은 물론, 딥 러닝을 학습해 더욱 진화하면서 인간을 뛰어넘거나 위협하는 상황이 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종교 또한 쇠퇴 일로이다. 미국 기독교인수가 10년전 보다 거의 8% 나 줄었다는 통계다. 문을 닫는 유럽의 성당과 미국의 교회가 늘어간다. 이는 세속화, 종교다원주의 영향과 함께 교회가 사회를 선도하는 빛과 소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역행하는 세상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는가? 그런데 서유럽을 여행하는 일행 중에 무거운 캐논 카메라를 목에 걸고 땀을 흘리며 셔터를 누르는 중년의 여인을 보았다. LA집에서 불치의 병으로 누워있는 남편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 보고싶다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쏟아지는 햇빛의 따스함과 미세한 바람의 속삭임, 푸른 나무의 숨소리를 담으려 애썼다. 누구나 쉽게 셀폰으로 복사하듯 사진을 찍어내는 데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세상의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마치 꺼져가는 남편의 생명을 되살리려는 간절한 기도처럼.. 오직 사랑의 힘만이 역행의 시대를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지도 모른다.

<김희봉 (수필가,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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