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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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착한사람 증후군

2019-09-17 (화)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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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인정을 받으려 하는 강한 성향이 있다면 착한사람 증후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착한사람 증후군(People Pleaser)이란 타인의 심리적 기대와 요구에 무분별하게 부응하려 애쓰며 정작 스스로는 자신을 인정하는 능력이 없는 증상이다. 타인의 유익을 위한 진정성보다는 대가로 받는 관심과 인정이 주 목적이다.

내 자신은 방치시킬지언정 상대가 원하는 말과 행동은 어떻게 해서든 파악하고 맞춰주는데 급급하다. 상대의 눈치를 보는데 온 마음을 쏟다 보니 혹여나 의견이 다르거나 만족을 주지 못할 까봐 속으로 조마조마하다. 타인의 결정에 무리를 해서라도 동의하고 따르다 보니 삶의 균형도 자주 깨진다. 우선순위가 뒤로 미뤄지기도 하며 예기치 못한 역할을 떠맡다 보니 늘 혼돈스러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상대방의 에너지에 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불이익마저도 함께 떠안는다.

이런 과잉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 탈진을 불러온다. 사소한 갈등의 순간에도 종종 분노의 임계점을 넘어서 황급히 관계가 단절된다. 상대를 관용하고 수렴하는 에너지마저 인정을 받으려는 데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며 살아남기 위해 내적으로 개발된 메커니즘이기에 알아차렸다고 해서 송두리째 뽑아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눈치가 빠른 여우 같은 사람들은 필사적인 감정구걸의 성향을 알아채고는 자기만족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너무나도 식상한 ‘자기 존중’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어야 할 것 같다. ‘자신을 사랑합시다’ 차원의 막무가내 자기애가 절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위한 최선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내 안에 체계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어떠한 상황이 나를 휘감을 지라도 나를 상자떼기 도매급으로 넘겨버리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오직 자신에게 부여받은 존엄성만 유효하다는 것을, 남에게 부여받는 존엄성은 조건적이거나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종속적인 자가 쉽게 가는 길의 종착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자신의 내적 안녕이 거절받을 위험보다 앞선다는 것을, 때때로 내적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치를 대가가 있다는 것을,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마땅한 내 자신을 타인으로 투영시키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한다는 것을,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해 직면하는 것이다.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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