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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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여름의 끝자락

2019-09-06 (금) 허진옥(재정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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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여름이면 마치 달팽이 가족처럼 이사를 가듯 이고지고 집을 떠나 그늘지고 시원한 곳을 찾아다녔다. 아이들이 많고 어리다 보니 마땅히 할 수 있는 놀이거리를 찾아야 했고, 또 자연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으면 TV 보거나 게임하거나 하는 모습이 보기싫어 궁여지책으로 주말마다 부지런히 이곳저곳 캠핑장을 찾아 헤맨 것 같다. 가깝게는 30분 거리, 멀게는 6시간의 거리를 정말 열심히도 다녔다. 올해 노동절 연휴도 가까운 캠핑장을 찾아 2박 3일의 여정으로 다녀왔다. 매번 짐을 싸고 풀 때는 이게 힐링이냐며 투덜거리지만, 캠핑장에 도착해서 집에 오기 전까지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캠핑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참으로 여유롭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또래아이들과 쉽게 친해지고, 서로의 캠퍼로 초대하여 스스럼없이 남의 집을 드나든다. 평상시 집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은 미국인들의 담장도 이때는 낮아진다. 아이들은 한식을 소개하기도 하고, 갈비라도 할 때면 우리 먹을 갈비가 남아있든 없든 다른 아이들이 맛있다고 하면 열심히 굽는 대로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역시 나눔은 행복이야, 이렇게 느끼고 있었는데 수염 덥수룩한 옆집 캠퍼 아저씨의 등장에 경계 태세를 하고 말았다.

마침 나타난 남편이 우리가 없었을 때 우리 트레일러를 봐준 분이라며 그 아저씨에게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수염 아저씨는 우리가 잘 도착했는지 인사하러 왔노라며,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허허 웃음을 남긴다. 그저 상대방의 겉모습만 보고 대낮에 겁을 냈던 내 모습은 다시 생각해봐도 부끄럽다. 예전엔 캠퍼에서 만나는 이들이 마냥 반갑고 즐거웠는데 무엇이 바뀐 것일까? ‘나’ 스스로가 더 각박한 세상 속으로 나를 밀어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보니 주위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이해심도 낮아진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을까? 이러니 점점 더 세상이 각박해지는 것은 아닐까?

내 집처럼 편하지는 않지만 디지털시대에서 아날로그로 돌아가야 하는 캠핑장에서 새로운 인연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세상이 살 만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이 캠핑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허진옥(재정전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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