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자 매캐한 연기 냄새가 달려들었다. 이젠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동네 산불’인데도 짓누르는 듯 탁한 잿빛의 하늘은 매번 음산하고 불안하다. 지난 일요일 늦은 밤까지 꺼지지 않는 글렌데일 산불을 걱정하며 같은 TV 화면 속에서 맹렬하게 타오르는 아마존 산불을, 그 거대한 불길로 다시 뜨거워진 기후변화 논쟁을 생각했다.
한 달째 계속되는 세계 최대 열대우림 아마존의 대형화재가 세계 기후에 끼칠 영향은 심각하다. 그렇다고 세계의 산소공급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흔히 아마존을 세계 산소의 20%를 생산하는 ‘지구의 허파’로 부르지만 과학자들은 틀린 수치이며 부정확한 비유라고 지적한다. 자체 생산한 산소만큼의 산소를 숲의 식물들이 자라면서 다시 흡수하기 때문이다.
세계 기후에서 아마존의 역할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빨려나가는 ‘싱크대’라고 브라질 기후학자 칼로스 노블레는 비유한다. 현재 세계는 매년 400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권으로 배출하고 있는데 아마존이 그중 20억톤을 흡수해, 기후변화를 막는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산불이 불법 삼림벌채를 위한 방화에 의한 것이고 환경보호를 외면하는 현 정권의 친개발정책이 불법 방화를 부추긴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다. 그러나 세계 주요 7개국 G7 정상들도 이에 대한 신속대책은커녕 국제사회의 환경정책 압박에 대해 ‘주권 침해’를 내세우며 화재진압 지원금을 안받겠다, 받겠다 흥정하는 브라질 대통령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기후대처에 시큰둥한 것은 트럼프도 브라질 대통령 못지않다. 파리기후협정 탈퇴, 탄소배출 규제 완화 등 회의적 입장을 견지해온 그는 이번 G7 정상회의 기후관련 토론엔 아예 참석하지도 않았다. 국제사회 기후대책에 관한 미국 대통령의 견해를 묻는 기자 질문에도 자신의 친개발정책에 바치는 찬가로 답했다 : “난 (기후 때문에) 부(wealth)를 잃을 생각이 없다. 솔직히 별 효과도 없는 꿈이나 풍차 때문에 부를 잃지는 않으려 한다.”
9월 뉴욕에서 유엔 기후정상회의를 주최하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회의적인 트럼프 행정부를 건너뛰어 미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것을 공개 시사했다. “난 기후행동 관련해 미 사회와 그 능력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다. 중요한 것은 미국사회, 미국업계, 미국 지역당국의 강력한 참여다”
그러나 기후변화 악화로 인한 ‘지구 위기’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대책 실현의 걸림돌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 주요장애는 따로 있다는 다양한 분석들이 제시되었다.
현 국제경제의 기반인 화석연료의 강력한 지구력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생활방식을 바꾸려는 의지 결여 때문이다. 쉽게 말해 미국인도, 유럽인도, 아시아인도…여러분도, 나도, 그 어느 누구도 ‘기후변화’ 때문에 편리하고 익숙한 내 생활방식을, 불편을 참아가며 때로 돈을 더 내며, 대폭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이다.
2018년 유엔기후보고서는 조속하게 파격적 대처를 하지 않으면 2030년엔 기온이 섭씨 1.5도 상승해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면서 “12년밖에 안 남았다”고 경고했다. 그동안 탄소배출량을 45%까지 감축시켜야 한다. 그건 석유·천연개스·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을 대폭 줄여야 하는 엄청난 도전이다. 호응은 미지근하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너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를 ‘사실’로 믿고 우려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처를 위해 기꺼이 내 주머니에서 돈을 더 내려는 사람은 드물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 개인이 감수하려는 부담은 1년에 200달러 이하인데 기후대책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선거에서도 기후는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기후행동 부재가 최근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고 악시오스는 전한다 :
홍수·가뭄·산불의 자연재해 후 치러진 금년 봄 호주총선에선 기후변화가 주요이슈였다. 여론조사에서도 61%가 즉각 대처를 원했다. 선거 결과는 기후대책에 미온적인 우파의 승리였다.
국민의 83%가 기후변화를 국가 위협으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지난 연말 대규모 장기 시위의 직접 계기는 기후대책의 일환인 개솔린세 인상이었고 정부는 결국 인상을 유예했다.
2018년 미 중간선거에선 리버럴한 워싱턴 주의 탄소세 주민발의안이 부결되었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대부분 적극 대처를 다짐하고 있다. 지난주 공개한 버니 샌더스의 16.3조 달러 엄청난 규모의 ‘그린뉴딜’ 정책은 사실상의 전력망 국유화를 전제로 하는 혁명에 가까운 체제개혁이며, 중도파 조 바이든도 2050년까지 온실개스 배출량 ‘제로’ 실현을 약속했다.
만약 2020년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미국의 기후정책은 전 세계가 주시할 시험케이스가 될 것이다. 내 돈 손해보고, 내 표 찍어주며 익숙한 내 생활방식을 대폭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은 민주당 유권자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누적된다. 대처가 늦어질수록 사태가 악화되어 해결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급한 난제다. 지구온난화를 확실하게 막을 기후 대책, 그러면서도 실행 가능한 현실적 플랜이 있기는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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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