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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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각자의 동그라미를 그릴 시간

2019-08-22 (목) 채영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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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 전이다. 하나뿐인 외동아들이 드디어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다는 사실은 내가 대학생이 되던 당시만큼이나 인생의 기쁨 그 자체였다. 그간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워질 감격의 그날만을 얼마나 기다려왔던지. 아이가 갈 학교가 최종 결정된 직후부터 귓가엔 내내 팡파레가 울려나는 듯했다. 큰 짐을 내려놓는 기분으로 하이스쿨 졸업식을 기쁘게 마쳤고, 근 두달 남짓 긴긴 여름방학을 거쳐 이 엄마는 얼마든지 쏘쿨하게 눈물없이 아이를 떠나보낼 수 있으리라 충분히 자신하고 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꿈에 부풀어 하루라도 빨리 대학교로 뿅 순간이동하길 원했다. 짐을 미리 챙겨 박스로 발송해 놓고 휑해진 방안을 보면서도 둘다 킥킥 신나기만 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 관계로 아이가 먼저 떠나고 우리 부부는 며칠 후 새 학교에 도착했다. 집에서 그렇게 어질러 놓고 살던 녀석이, 깔끔하게 자기 짐을 풀고 정리해놔서 손님처럼 우아하게 잠시 앉아있다 나왔다.

아이 학교는 전체 신입생이 각 기숙사별로 색색의 티셔츠를 입고 성대하게 거국적인 입학식을 하는 몇 안되는 학교이다. 우리는 달랑 부모만 갔지만, 다른 집들은 일가친척들이 다와서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였다. 입학식 행사 후 가족들이 먼저 퇴장하여 미리 나눠준 야광봉을 들고 나란히 서있으면 백파이프 연주를 선두로 학교 관계자들이 나오고 각 기숙사별로 그 많은 아이들이 흥겹게 행진을 한다. 정문 앞 광장에 모두 모여 유명 로컬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는 것으로 그밤의 마무리를 한다.


입학식 다음날에 바쁜 아이를 잠깐 불러내어 아이가 좋아하는 고기 메뉴로 저녁을 사주었다. 기숙사 앞에서 안아주고 돌아나올 때까지도 괜찮았다. 그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마음에 돌덩이가 쿵 내려앉았다. 이 낯선 도시에 내 새끼 하나만 달랑 놓아두고 가는구나. 아프거나 다치거나 무슨 일이 생길지라도 이 엄마는 즉각 도와줄 수 없을 뿐더러 말 안해주면 아예 모를 수도 있겠구나. 멀리서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오직 기도밖에 없음을 절실히 깨닫는 뭉클한 순간이었다.

이륙하는 비행기 안에서 도도히 흐르는 장강과 밝아오는 하늘을 바라보며, 너와 함께라 행복했던 기억들을 소환해보며, 이제 너도 너만의 동그라미를 그리는구나. 인생에 다시 없는 대학생활을 맘껏 누리거라 되뇌었던 그날의 기억,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채영은(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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