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율주행차와 무사고 45년

2019-08-15 (목) 김영자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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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도 중순에 접어들며 어느새 여름도 막바지다. 수명은 계속 길어지고 부모와 자식들이 같이 등이 굽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많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근래에는 노인들의 교통사고가 청소년들을 앞지른다고 한다.
나는 금년으로 무사고 45년의 운전면허증 소유자이다. 45년 전 한국에서는 버스나 지하철 택시를 이용하였었고 자가용 운전자는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남편이 출퇴근용 차가 생기자 운전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나도 등록을 했고 얼마 후 같이 응시했다.
군대시절 지프차를 몰아본 경험자인 남편은 쉽게 합격할 것이고 생전 처음 운전대와 만난 나는 여러 번 떨어질 예상을 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남편은 여섯 번 시험을 보았고, 나는 첫 번에 시험을 통과하고 면허증을 취득했다. 남편은 곧바로 운전을 하며 일터로 다녔지만 전업주부이던 나는 내 차까지 마련하기는 허세와 낭비였으니 운전기회가 없었고 남편이 쉬는 날 조수석 신세였다. 세월이 흘러 다 늘그막에 이민을 오니 또 다시 라이센스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30년도 넘는 베테랑 운전자이던 남편은 이상하게도 응시 5번째에, 시내 주행경험이 몇 번 밖에 없었던 나는 두 번째 시험에서 라이센스를 받았다.

나는 남편에게 우쭐대며 말했다. “운전실력은 내가 한 수 위네. 그러면 뭘 하나. 언제나 조수석 팔자인걸” 옆에 있는 딸이 위로해주었다. “조수석이 좋은 거야. 서투른 운전하다 사고라도 내면 죄 없는 사람까지 다치게 해 엄마는 성격이 급해서 아빠가 차 열쇠를 안 주실 거야” 나는 철두철미한 남편의 과잉보호 덕분에 세월만 보내버렸고 내 기술로 쭉 뻗은 고속도로 한번 시원하게 달려보지 못하고 내 운전면허증은 지갑 속에서 잠만 잤다. 그러던 남편이 노환으로 운전이 어렵게 되자 딸이 우리 차를 잽싸게 저희 집으로 몰고 갔다.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나 내가 쓸 내차니까 당장 가져오라고 소리 질렀다. 딸이 배시시 웃으며 대꾸했다. “엄마 나이면 수 십 년 운전자도 손을 놓아요. 마음처럼 순발력이 따라주지 않아요” 나는 차를 탈취 당하고도 할말을 잃었다.

내 인생길 어언 80리를 걷고 있다. 그래 각성해야지. 이젠 접어야지… 하긴 내 주변에 나를 라이드해 줄 운전자들이 많다. 내가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올 딸과 동생들이 있다. 그도저도 안되면 택시가 있다. 조수석이나 뒷좌석에서 감미로운 음악 들으며 졸리면 잠도 자고 나는 한여름 늘어진 개팔자이다. 이런 쓸모 없고 볼품 없는 노인의 모습이지만 아직도 꿈은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 자율주행차가 일반화 된다고 한다. 그때는 근사한 내 소유의 차를 가져보고 마음껏 자유롭게 다니며 노년을 즐겨야지… 나는 딸도 모르게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있다.

<김영자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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