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을 든 그 손은 전 세계로 환영의 빛을 보내며…/고요한 입술로 외친다. ‘너의 지치고 가난한,/자유를 숨 쉬기 갈망하는 무리들을/너의 붐비는 해안가에서 버림받은 가련한 자들을 내게 보내다오/그들 세파에 시달린, 집 없는 자들을 내게 보내다오/내가 황금의 문 곁에서 나의 등불을 들어 올리리니”
많은 이민자들이 이번 주 자유의 여신상 받침대에 새겨진 에마 라자러스의 이 시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래 전 힘들고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 하고 기회의 땅을 향하며 품었던 아메리칸 드림을 기억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민을 대폭 제한할 트럼프 행정부의 새 이민규정을 켄 쿠치넬리 이민국장 대행이 발표한 다음 날인 13일 공영방송 NPR의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진 라자러스의 시가 미국정신의 한 부분이라는 것에 동의하는가?”
그는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시를 이렇게 비틀어 인용했다 : “너의 지치고 가난한, 자립할 수 있는 자들, 정부에 공적 부담이 되지 않을 자들을 내게 보내다오”
10월 시행 예정인 새 규정은 영주권과 비자 신청자가 가난하거나 학력이 낮거나, 미 정부의 공공보조 혜택을 받았거나 받을 것으로 보일 경우, 신청이 거부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규정은 아니다. 현행 이민법의 기존 규정을 확대한 것이다. 공공보조 수혜의 경우, 기존 적용되던 현금성 보조에 더해 메디케이드에서 푸드스탬프와 주거지원까지 거의 모든 저소득층 복지 수혜가 영주권 거부 사유가 될 수 있게 강화했다.
얼마나 가난한 것이 이민을 거부당할 만큼의 ‘가난’이 될까. 이민정책연구소는 연방빈곤선의 250%에 해당하는 ‘4인가족 6만2,000달러의 연소득’이 기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비시민 합법이민과 이민신청자 중 카리브해 출신의 72%, 멕시코와 중미의 71%, 아프리카의 62%, 아시아의 52%가 이 연소득 기준에 못 미친다. 유럽 출신은 36%로 훨씬 낮다. 새 규정이 가난한 나라 출신의 유색인 이민을 겨냥하는 차별적 ‘부자 테스트’라는 비난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미 역사만큼 오래된 것이 ‘이민 때리기’다. 처음엔 아일랜드 출신을, 다음엔 이탈리아 출신을, 폴란드 출신을, 유대인을, 중국인을, 멕시코인을…경계하며 배척해 왔다. ‘퍼블릭 차지(Public Charge:생활보호 대상자) 규정’으로 통하는 이 1882년 제정 이민법도 당시 토착주의자들의 새 이민에 대한 반발, 두려움, 텃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민심사관에게 “전과자, 광인, 천치, 정부의 도움 받는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지 않고는 자립할 수 없다고 생각될 경우” 누구든 미 입국을 거부하도록 허용한 이 법에 따라 당시 남성을 동반 안한 여성과 아이들, 동성애 의심자들, 청각장애자 등이 입국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미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반영하는 법이지만 지난 130여년 시행되는 동안 이 법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경우는 극소수였다. 국토안보부에 보낸 공동 보고서에 서명한 역사학자들은 “일해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이민자들을 원하는 한편 이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정부와 커뮤니티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라면서 트럼프의 새 규정은 오래 지속되어온 이 같은 가치관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 이민규정의 진의가 ‘합법이민 축소’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규정이 적용되면 당장 38만2,000명의 영주권 신청자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국토안보부는 예상한다. 이민단체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우려한다. 합법이민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현재의 가족우선 이민제도가 의회의 입법 없이 행정명령만으로 트럼프 백악관과 공화당이 선호하는 능력위주 방향으로 슬그머니 바뀔 수도 있다. 영주권과 시민권 취득에 불이익을 우려한 가난한 이민자들이 복지수혜를 꺼려하며 신분보장과 기본복지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내몰릴 위험 또한 크다.
다행히, 트럼프의 ‘반이민’ 새 규정의 순항은 어려울 것이다. 당장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주정부와 이민단체들이 소송을 예고하고 있다. 의회 입법으로 허용된 복지수혜를 행정명령으로 금지시킬 수 있는지, 강요당한 양자택일이 초래한 응급상황으로 인한 로컬정부의 부담은 정당한지…법정투쟁은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그 전에 투표소에서 미국의 기본 가치관을 뒤집으려는 저의에 대한 심판이 내려질 수도 있다.
오늘의 미국을 만든 것은 전 세계에서 모여들어 함께 땀 흘린 ‘지치고 가난한 무리들’이었다.
원주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미국인은 “찢어지게 가난한 채 미국에 도착했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채 미국에 도착한 사람들의 후손과 친척들”이라고 전제한 시카고-선타임스도 “아일랜드나 이탈리아에서 왔던, 소말리아나 베트남에서 왔던, 우리는 맨손으로 시작해 안정된 삶을 이룬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숨 쉬기 갈망하는 무리들’의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색인종 테넌트들을 무자비하게 내쫓던 ‘아파트 임대사업 방식’으로 나라를 운영하려는 트럼프는 ‘지치고 가난한 무리들’을 향해 점점 더 큰 소리로 “가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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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