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퀘렌시아
2019-08-14 (수) 12:00:00
유명현 / 샌프란시스코
퀘렌시아(Querencia)는 투우장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소를 위한 공간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퀘렌시아에 있는 동안 소는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어있지 않기에 안전함을 느낀다. 온전히 본연의 모습으로 숨을 고른다. 소가 마지막까지 싸울 힘을 장전하는 특별한 장소다. 그래서 이 단어는 안식처, 피난처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 번씩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유용하게 작용하는 생산적인 고독의 장소다.
고독과 외로움은 엄연히 다르다. 누군가와 만나서 다섯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고 집에 가는 길에 다시 전화를 하고픈 마음은 외로움이다. 타인으로부터 채워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고독은 다르다. 자발적인 고립이며 성숙을 가져온다. 관계중심적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으로 인해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장소다.
에너지가 장전된 후엔 더 이타적인 사람이 된다. 의미 깊은 관계형성 속에 더 많은 친절을 베풀 수 있다. 건강한 이기주의자는 효율적인 이타주의자다. 비행기 추락 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자신이 먼저 껴야한다. 이것은 비행기 안내방송과도 일치한다. 내가 먼저 숨을 쉬어야 옆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지인과 예기치 못한 마찰이 있었다. 옛날 같았으면 감정에 북받쳐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퀘렌시아 속에서 조용히 용해시키는 매커니즘을 개발했다. 지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하고 현재에 닻을 내린 다음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지금 내가 마주한 사람, 지금 내가 처한 장소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왜 이것을 이제야 알았을까.
<유명현 /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