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성진 칼럼] 53년 전 첫 어버이날을 기억하며

2026-05-15 (금) 12:00:00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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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을 맞이하며 53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1973년 5월 8일 국민(초등)학생이던 필자가 아버지 가슴에 처음으로 색종이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던 기억이다. 난데없이 카네이션을 달게 된 아버지가 어색해하면서도 밝게 웃으시던 모습도 생각이 난다.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뀐 그해부터 자녀들은 카네이션을 2개씩 준비하게 됐다.

나라마다 어버이를 공경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다. 프랑스는 어머니날을 매년 5월 마지막 일요일로, 아버지날은 6월 셋째 일요일로 정해 기념한다. 기념일은 꽃이나 축하 카드 등으로 가볍게 치르는 편이다. 미국·영국·일본 등도 프랑스와 비슷하다. 으레 가족 모임을 가지며 어버이날을 거의 명절 수준으로 치르는 우리나라는 전통 효(孝)·경로 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성공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효·경로 의식에 변화가 크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모실 책임이 자식에게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은 20.63%에 그쳤다. 2007년 첫 조사에서는 52.6%나 자녀에게 부모 부양 책임이 있음에 동의했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28~30일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가 노인 기준 연령을 현행 만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해 2015년(46%)에 비해 큰 차이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초고령사회 진입이 세계에서 가장 빨라서 생긴 변화일 것이다. 한국은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14% 이상인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7년 만인 2024년 초고령사회(20%)에 들어섰다. 프랑스는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30년 넘게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는 2050년쯤 국민 5명 중 1명이 80세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급격한 초고령화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한다. 정부 추계에 따르면 연금·의료비 등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 지출은 2025년 약 15.5%에서 2065년 26.9%로 급증한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고령인구 비율을 나타내는 노년부양비는 2025년 29.3명에서 2035년 47.7명으로 폭증하고 2050년에는 77.3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초고령자 부양 부담을 방치하면 파국을 부를 수 있다.

프랑스는 파국을 예방하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자립과 연대의 조화’를 앞세운 노인복지 정책을 추진했다. 우선 ‘가정 입원’을 법적 입원 진료로 포함시켜 병원 입원 대비 30~40%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또 자택의 독립성과 시설의 지원 기능을 결합한 ‘자율형 주거’ 모델을 확대해 노인이 익숙한 생활 공간에서 돌봄과 사회적 연대를 동시에 누릴 수 있게 했다.

특히 ‘세대 간 동거’ 노인복지 모델의 도입을 주목할 만하다. 60세 이상 고령자가 자신의 집 일부를 30세 미만 청년에게 저렴하게 빌려주는 이 제도는 노인의 고립과 청년의 주거난 완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법으로 우리도 고려해봄 직하다.

반면 ‘제론토크라시’ 덫에 걸린 이탈리아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이탈리아는 인구 4명 중 1명이 넘는 65세 이상의 표심만 좇는 포퓰리즘에 매달리고 청년 정책은 등한시한 결과 파국을 자초했다. 정부 부채비율은 GDP 대비 148%로 급등하고 15~24세 청년 실업률은 한때 42.7%까지 치솟았다. 제론토크라시는 그리스어로 고령을 뜻하는 ‘제론’과 체제를 의미하는 ‘크라시’가 합쳐진 말로 이탈리아는 대표적 제론토크라시 국가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우리나라는 40대 이상 성인 10명 가운데 8명이 노후에도 자신이 살던 집이나 동네에서 돌봄 받기를 바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시행 두 달째를 맞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안착 등 초고령사회 대비책 마련이 절실하다. 하지만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문제다. 게다가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한국의 GDP 대비 정부 부채(D2) 비율이 2030년 60% 돌파를 점칠 만큼 재정 형편이 빠듯하다.

자칫하면 이탈리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나라도 제론토크라시 덫에 걸릴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노인은 존엄한 여생과 임종을, 청년은 좋은 일자리와 밝은 미래를 향유할 수 있는 ‘세대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 찾기는 효·경로 사상이 깊은 우리의 장점을 잘 살린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문성진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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