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K증시의 꿈 ‘한국판 골드만삭스’
2026-05-15 (금) 12:00:00
김정곤 서울경제 논설위원
1869년 독일계 유대인 이민자인 마르쿠스 골드만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비좁은 지하실에 차용증을 거래하는 가게를 열었다. 골드만은 매일 아침 보석상과 가죽 상인들을 찾아가 차용증을 사들였다. 자금 융통이 어려운 뒷골목 상인들의 차용증을 싸게 사들여 수수료를 붙인 뒤 은행에 되파는 일종의 어음중개업이었다. 훗날 사위인 사무엘 삭스가 합류하며 골드만삭스로 이어졌다. 골드만삭스는 창립 150여 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자본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초대형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자기자본투자(PI)를 주도하는 월가 투자은행(IB)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 증시는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처럼 외국인 자금과 글로벌 변수에 출렁거린다는 뜻에서 ‘천수답’으로 불리기도 한다. 증권사들의 수익 역시 위탁매매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의존하는 전형적인 천수답 구조다. 한국 증시는 천수답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꿈꿔 왔다. 금융 당국 수장과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들을 상대하기에는 덩치도 실력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국내 증시에 의미 있는 이정표가 세워졌다. 미래에셋증권이 국내 증권사 최초로 분기 당기순이익 1조 원을 달성했다.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위탁매매를 넘어 스페이스X 같은 해외 혁신 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글로벌 자산관리(WM)에서 고른 성과를 올렸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과 함께 자기자본 8조 원 이상의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되며 한국판 골드만삭스 모델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은 데 이은 쾌거다.
■최근 코스피가 크게 오르며 증시의 외형적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체질 개선을 논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국 증시가 한 단계 더 레벨업하려면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 고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긴 호흡으로 투자할 수 있는 IB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가야 할 방향이자 한국 증시가 천수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김정곤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