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2019-08-14 (수) 12:00:00 변혜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
크게 작게

▶ 집파리·쉬파리·금파리·초파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것 외에 혹파리·꼽추등에·벌붙이파리···생각지도 못했던 이름들 즐비

▶ 보통 곤충과 달리 날개 2개지만 탁월한 비행 능력 가진 종 많아...분해자·사냥꾼·기생 다양한 삶, 생태계 ‘공존’ 위한 큰 축 담당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검정파리. 고기나 동물의 시체, 살아 있는 동물의 상처에 알을 낳는다. 검정파리는 며칠 사이에 수천 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을 정도로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파리목 등에과의 곤충인 등에 가운데 왕소등에, 북방등에 등은 동물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빠는 섭식형태를 보인다.[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쉬파리는 썩은 고기나 사람이나 동물의 똥에서 발생하며 인간에게 질병을 전파하는 해충으로 분류되지만 동물 사체를 분해하는 역할로 인해 법의학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왕파리매는 사냥에 능해 잠자리나 풍뎅이처럼 자신보다 덩치가 큰 곤충도 잡아먹는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춤파리. 짝짓기 철이 되면 먹잇감을 잡아 암컷에게 선물하며 환심을 산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기생파리.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생물 10종 중 1종, 무려 15만종이 파리…‘날파리’는 없어요

벌붙이파리는 주로 벌목·파리목·메뚜기목 등의 곤충에 기생을 한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여러분은 곤충을 좋아하시나요? 생각보다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어릴 때부터 곤충을 가까이하고 곤충학을 공부하며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살아온 필자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말입니다. 만 5살이 되지 않은 딸이 지나가는 곤충을 보며 지레 겁먹는 모습을 보면 곤충을 피하는 것이 인간의 내재적인 본능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더구나 파리라고 하면 더더욱 사람들의 반응이 극명해집니다. 개인적인 혹은 공적인 모임에서 필자가 파리를 연구한다고 하면 예의상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지만 ‘굳이 왜?’라는 표정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곤충은 날개가 4개인데 왜 파리는 2개일까

파리라는 생명체는 지구상에서 훌륭하게 살아남은 ‘성공한’ 생물입니다. 현재까지 지구상에 살아가고 있다고 알려진 종들은 대략 160만 종입니다. 그 중에서 곤충이 83만 종으로 거의 절반이 넘는 수를 차지하고, 곤충 중에서 파리는 15만 종이 넘습니다. 물론 이 숫자들은 방법론에 따라 차이가 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생물들이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최소한의 숫자로 판단되긴 합니다. 하지만 그 비율로만 따져도 곤충 10종 중 2종은 파리이며, 전체 생물로 확장한다면 지구상 생물 10종 중 1종은 파리라는 산식이 나오니 그 숫자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람이 포함된 포유류의 종수는 5,800여종으로 전체 생물의 0.4%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파리라는 생물의 다양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생물의 전체적인 비율은 이와 비슷하게 분포하며, 파리는 2,000여종이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는 몇 종이나 될까요? 집파리, 쉬파리, 금파리, 초파리…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날파리’ 정도일 겁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발간한 국가생물종목록집을 보면 그동안 듣고 보지 못했던 요상한 이름의 파리들이 정말 많습니다. 식물에 혹을 만드는 혹파리, 다리가 길어 장다리파리, 벌을 닮은 벌붙이파리, 허리가 굽은 꼽추등에, 식물 잎이나 줄기에 굴을 파고 사는 굴파리, 다른 생물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기생파리 등 생각지도 못했던 파리들의 이름이 즐비합니다.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날파리’라는 파리는 없다는 것입니다. 날아다니는 작은 벌레들을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 실제 ‘날파리’와 비슷한 특징을 갖는 파리는 ‘깔따구’ 정도입니다.

파리는 영어로 ‘플라이(fly)’입니다. 곤충 이름과 관련된 영어 단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유독 fly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비(butterfly), 잠자리(dragonfly), 강도래(stonefly), 날도래(caddisfly), 하루살이(mayfly) 같은 곤충들이 모두 fly란 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곤충분류군명의 라틴어에서는 ‘프테라(ptera)’라는 것이 많은데, 이는 날개(wing)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곤충에 있어서 날개는 생태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름의 기원으로 많이 쓰이며, 영어에서도 그 의미를 차용해 fly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파리는 분류군명이 ‘디프테라(Diptera)’로 날개가 둘인 곤충(Di=two, Ptera=wing)을 의미합니다. 곤충은 기본적으로 날개가 한 쌍 즉 4개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비, 잠자리, 메뚜기, 바퀴벌레 모두 날개가 4개입니다. 그러나 유독 파리는 날개가 2개입니다. 분류학적으로 파리의 보이는 날개는 앞날개이고 뒷날개는 평균곤(halter)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기관으로 바뀌어 비행 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날개가 2개이면 4개일 때보다 비행능력이 떨어질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곤충들보다 더 다양한 비행능력을 보여주는 종들이 많기 때문에 뒷날개가 ‘퇴화’됐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기능으로 ‘변형’됐다는 표현이 오히려 적당할 것입니다.


법의학에도 유용하게 쓰이는 파리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파리가 과연 지구상에 필요할까요? 그 많은 종의 파리들이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파리들은 종수만큼이나 다양한 환경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며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지구환경을 지켜왔습니다. 이들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파리들로 ‘분해자’들입니다. 이 부류들은 도시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인간에게 질병을 전파하는 ‘해충’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집파리, 쉬파리, 금파리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이 종류의 파리들은 동물사체를 분해해 빠른 시간에 생태계의 물질순환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해자입니다. 이 분해자들은 부패하고 있는 유기물과 음식물을 구분하지 않고 옮겨 다니다 보니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세균을 전파시키는 부작용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이러한 역할을 하는 생물들이 없다면, 주변에서 분해되지 않고 방치된 사체나 유기물로 인해 더 고통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 종류의 파리들은 놀라울 정도의 후각기능을 보여줍니다. 야외에서 음식물이 든 그릇의 뚜껑을 열자마자 순식간에 여러 종류의 파리들이 몰려든 경험을 대부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현대에는 이들의 놀라운 능력을 활용하여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에서 유독 한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데, 주인공인 막시무스가 포로로 끌려가면서 상처가 난 부분에 구더기가 슨 것을 보고 떼어내려 하자 같이 잡혀가던 한 포로가 저지하던 장면입니다. 이것은 상처 난 부분의 죽은 세포를 파리의 애벌레가 먹어 치워 상처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 한 가지, 법의학에서 사망자의 사망시간을 추정하기 위해 파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사망자에게서 발견된 파리의 정확한 종, 온도, 습도, 지역, 위치 등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이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러한 방법이 실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냥에도 능한 파리

‘분해자’ 역할의 파리들을 죽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에 비유한다면,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냥을 하는 매 같은 사냥꾼에 비유될 수 있는 종들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파리로 파리매가 있는데요. 이름에서 보이는 것같이 매처럼 주로 날아다니는 곤충을 사냥합니다. 파리매는 곤충들의 이동이 많으며 넓은 시야가 확보된 높은 곳에서 앉아 있다가 지나가는 곤충을 낚아채어 잡아먹습니다. 그렇다고 씹어 먹는 것은 아니고 뾰족한 입으로 소화액을 넣어 어느 정도 소화된 체액을 빨아먹습니다. 보통 자신보다 작은 먹잇감을 선호하지만 나비, 잠자리처럼 자신보다 훨씬 큰 먹잇감도 기회가 된다면 마다하진 않습니다.

이 외에도 사냥을 주로 하는 파리들이 존재하는데 하나 더 소개한다면 춤파리가 있습니다. 영어로는 ‘댄싱 플라이(dancing fly)’라고 하는데 수컷들이 암컷을 유혹하려고 하늘에서 날아다니며 움직이는 것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이 종류의 파리들은 재미있는 생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컷은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일종의 선물을 준비합니다. 짝짓기 철이 되면 수컷들은 먹잇감을 잡아서 암컷에게 선물하고, 암컷은 선물을 보고 수컷의 능력을 판단하여 자신의 짝을 선택합니다. 아무래도 작은 선물을 주는 수컷보다 큰 선물을 주는 수컷이 힘 세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야외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사실 춤파리는 그리 훌륭한 비행능력을 가진 파리는 아닙니다. 파리 중에서 가장 비행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종은 단연 꽃등에입니다. 꽃등에는 속도, 민첩성, 비행기술 등 놀라운 비행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래서 포식성 곤충들이 날아다니는 꽃등에를 잡기는 여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많은 꽃등에가 춤파리에게 잡혀 암컷에게 재물로 바쳐집니다. 그것도 수컷들만 말입니다. 운이 없어서일까요? 이들의 행동을 자세히 보면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수컷 꽃등에들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물론 이러한 행동도 당연히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암컷에게 자신의 능력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좋은 자리를 차지한 수컷은 주변을 끊임없이 비행하면서 근처로 날아오는 곤충들을 쫓아냅니다. 그것이 자신과 같은 종의 수컷이든 다른 종의 곤충이건 따지지 않고, 자신보다 큰 곤충일지라도 일단 위협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춤파리는 이러한 꽃등에의 특징을 노려 은근슬쩍 수컷 꽃등에의 영역으로 들어가 호전적인 수컷의 전투의지에 불을 지핍니다. 꽃등에가 춤파리를 쫓아버리기 위해 다가오면 그때를 놓치지 않고 포식자의 본능으로 먹잇감을 낚아채게 됩니다. 야생에서 암컷을 얻기 위한 수컷의 이러한 노력은 정말 눈물겹습니다.

파리, 지저분해도 생태계에선 중요한 존재

포식의 또 하나의 얼굴은 기생입니다. 기생은 영어로는 ‘패러사이트(parasite)’와 ’패러사이토이드(parasitoid)’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기생으로 번역되지만 사실 좀 차이가 있습니다. 패러사이트는 이, 벼룩, 빈대같이 숙주가 되는 생물을 힘들게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죽이지는 않습니다. 반면 패러사이토이드는 숙주의 내부에서 몸 속을 야금야금 먹으며 결국은 숙주를 죽음으로 내몹니다. 대부분의 기생성 파리, 벌들이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패러사이토이드는 포식자의 한 모습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리에는 정말 다양한 기생성 생활을 하는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로 나비, 나방 유충에 기생하는 기생파리과, 달팽이를 먹는 들파리과, 거미에 기생하는 꼽추등에과, 매미충에 기생하는 머리파리과, 개미에 기생하는 벼룩파리과 등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종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들의 생활사를 단순히 생각하면 잔인한 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생파리 암컷이 나방 유충의 피부에 알을 낳으면 얼마 뒤 깨어난 파리 유충은 나방 애벌레의 몸 속으로 들어가 기생생활을 시작합니다.

기생생활을 하려면 복잡한 생리학적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 숙주의 면역체계를 극복해야 하며, 몸 속에서 호흡하는 방법도 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극복하고서 파리 유충은 하늘을 날아오르기 위해 신선한 먹이가 되는 숙주를 최대한 오랫동안 살려 놓아야만 합니다. 기생생활을 하는 파리의 유충은 숙주의 몸 속에서 가장 생명에 치명적이지 않은 부분부터 먹기 시작합니다. 즉, 체액부터 시작해서 지방질 같이 성장 속도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 부분을 먹고 자라다가 마지막으로 번데기가 되기 직전에는 숙주 곤충의 생명에 치명적인 부분인 신경계까지도 먹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신경계같이 중요한 부분을 먹게 되어 숙주가 죽어버리면 자신도 숙주와 같은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쯤 되면 숙주 곤충은 겉은 멀쩡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미 속은 남은 게 없게 되어 흔히 말하는 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리 유충은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오면서 자신은 바로 번데기로 탈바꿈하고 숙주는 껍질만 남은 힘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잔인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은 이 모든 것을 통해 균형을 맞추어 갑니다. 토끼가 늘어나면 늑대 숫자가 같이 늘어나다가 늑대 숫자가 너무 많아지게 되면 토끼 숫자가 줄어들고 다시 늑대 숫자도 줄어들게 됩니다. 긴 시간의 영역에서 본다면 거의 평행선을 유지하듯 기생자와 숙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대립관계처럼 보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에게 의존하는 것 같은 양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지구 생명체의 10%가 되는 파리들의 생태계 내에서의 역할은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점이 필자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전투의식을 고취시키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 그 미지의 영역까지 다루기엔 지면이 부족합니다. 다만 파리라는 생명체도 자세히 보면 지구생태계를 이루는 큰 축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변혜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