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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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시애틀의 밤

2019-07-25 (목)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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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듯 날아서 도착한 시애틀은 우리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의 풍경과 많이 닮은 곳이었다. 내게는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촬영 장소들과 스타벅스 일호점이 있다는 이유로 꼭 가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였는데, 마침 한국학교 학회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기쁜 마음으로 오게 됐다. 야경을 보러 가기 위해 탄 우버 운전사는 아프가니스탄 사람이었는데 조지아주에서 얼마 전에 이사했다고 한다. 여행이 아니라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온 것이다. 17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던 내 삶의 여정처럼 말이다. 처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집으로 향하는 차창 밖을 보며 느꼈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황량하고 낯설었던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남편과 단둘이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어느덧 아이들도 이 곳에서 자라 한인 2세로 또 다른 삶을 계획 중이다.

학회 둘째 날, 작년 시카고 학회에서 만났던 전후석 강사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예전보다 좀 여윈 얼굴이었지만 그의 메시지는 작년보다 더욱 강렬해서 청중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는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우연히 가게 된 쿠바 배낭여행에서 한인 후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100년간의 이민사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작년에 미완성 본이었던 그의 영화가 드디어 완성돼 올해 미국 곳곳에서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로 정의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한국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쿠바로 강제 이민됐던 가족들이 힘든 상황에서도 그들의 말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듯이 한국이 아닌 곳에 살면서 겪는 소외감과 이질감은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야만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 한국학교 협의회 학회를 통해 한인 2세 학생들을 세계 시민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한국어 교육의 방향들과 수업 방법에 관한 진지한 토론들이 나흘동안 계속되었다.

학회를 마치고 야경으로 유명한 케리 파크(Kerry park)를 다시 찾았다. 항구도시답게 시애틀의 야경은 밤바다와 어우러져 잔잔하면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흩어져 있지만 저마다의 빛을 강하게 발하는 바다 위의 불빛들처럼 우리 아이들도 세계 곳곳에서 한국인으로서 그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으며 아름답게 빛나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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