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한 곳을 향한 시선들, 그곳에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이 새겨진 종이를 양손으로 들고 고개를 기웃거리며 누군가의 시선을 찾는 이들, 칭얼거리는 어린 아이를 안고 출구를 서성이는 젊은 여인, 친구들과 노래를 흥얼거리며 또 다른 이들을 기다리는 젊은이들. 그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만남을 이루고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간다. 저 문이 열리면 기다리는 이가 달려 나올거라는 기대의 시간들. 그들에게 기다림은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니다.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는 그곳으로 마음이 달려가는 길 위에 시간이라는 바퀴가 돌아가고 있을 뿐.
공항 출입국장은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분주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남을 이룬 사람들을 보며, 이곳이 ‘비행기 출입국장이 아닌, 시간여행 출입국장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저 문을 넘어 사랑하는 사람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시간을 되돌려 사랑하는 사람이 비행기에 오르기 전 시간으로 돌아가 함께 저 밖, 저 이글거리는 태양과 바람이 있는 곳으로 함께 나아가는 생각을 수천, 수만번 했던 한 사람이. 새벽녘 정막을 깨우는 전화벨. 그 한통의 전화는 긴 터널 여행의 시작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아닌 주변의 일상 속에서 이러한 일들은 무심히도 일어난다.
세월호의 아픔이 아직도 선연한데 얼마전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 중이던 여행객들이 탄 배가 다뉴브 강의 어둠 속에 전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했다. 공항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냈을 6살 어린 소녀, 가족을 떠나 보냈던 이들의 기막힌 사연들이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저 출구로 되돌아 올 줄 알았던 이가, 되돌아 왔을 시간이 훨씬 지났음에도 되돌아 오지 않는다. 그러던 이가 거짓말처럼 저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 누군가의 잘못을 찾아 탓한들 기다리는 이가 되돌아오지 않는 그 마음을.
수십년 전 그 긴 터널 여행의 끝에서 우리는 그리운 이를 떠나보내고 상실로 아파했던 그 분마저 또다시 보내 드려야만했다. 그때 함께 기다리던 시간여행 속 터널을 이제는 남겨진 우리가 기억한다. 그 문을 열고 함께 만나는 시간을. 그 분은 마침내 수천, 수만번 생각했던 시간여행 속에서 그리운 분과의 만남을 이루셨으리라.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 상실의 아픔은 쉽사리 아물지 않았고, 시간은 스스로 쌓아 기다림으로써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을 배우게 했다.
내가 자주 들리는 스텐포드 대학의 켄터 아트센타 앞에는 로댕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어깨에 돌 항아리를 짊어진 청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있다. 나의 그의 어깨에 얹혀진 돌항아리를 내려주고 싶다. 그리움의 항아리는 결코 가볍고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깨 위 두 손으로 항아리를 받혀 들고 앉은 그의 모습이 비오는 날이면 항아리에 물이 고여 들어 더욱 무거워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무게만큼의 항아리를 들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무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무게, 갈망과 갈증으로 타들어가는 욕망이라는 무게, 갖은 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욕심의 무게들까지. 항아리 어딘가에 작은 구멍을 내어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 때마다 물을 흘려보내 듯 무게를 덜어내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다른 이의 무게를 함께 덜어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상실의 아픔도 함께 치유가 나갈 수 있으리란 작은 희망을 생각한다.
수십여년 전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냈던 그분이 먼 타국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오래전 미국으로 유학을 와 소식이 끊겼던 던 한 제자가 신문에 실린 부고 기사를 보고 한국에 계신 선생님이었던 그분께 소식을 전해왔다. 그곳엔 선생님의 사모님이자 또한 선생님이었던 분이 타국에서 연수 중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 부고 기사가 실려 있었다. 그 아픔의 무게를 알고 아파했던 어렸던 제자로부터의 조의 소식은 그분께도 작은 위로가 되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기사를 알렸던 미주한국일보가 올해로 50주년이 되었다. 인터넷과 소셜 네크워크를 쉽게 이용할 수 없었던 시절, 공항에서의 헤어짐이 마치 일생에서 다시 만나기 힘들 것처럼 울며 떠나보내던 공항의 풍경들 또한 달라졌지만, 그 긴 터널들 속에서 아픔과 상실에 위로를 전하며 함께 해오셨을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아침 안개가 걷히고 밝은 햇살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일상의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시간여행 중인 바람이 전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 바람을 타고 빠르게 흐르는 구름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기적같은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
김소형 SF한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