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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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화양연화(花樣年華)

2019-06-27 (목)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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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끼리 영화를 봤다. 최근에 개봉한 ‘알라딘’은 내용을 익히 아는 영화인데도 새로운 구성과 뮤지컬 요소들이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했다. 교훈적인 메시지와 몇몇 지니의 대사들도 기억에 맴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신이 난 아들이 남은 팝콘을 공중에 던져 먹겠다며 재롱을 부렸다. 따라가던 딸아이도 날아가는 팝콘을 손으로 받으며 둘이서 깔깔댔다. 남편과 뒤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아이들의 자란 뒷모습을 보노라니 가슴 뭉클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여름 저녁의 밤공기가 주는 시원함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랑스러워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잠시 이 순간이 멈추기를 소원했다. 영화 속의 알라딘이 선택했던 삶처럼 소박하지만 내가 나답게 살고자 노력했던 시간들이 무척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그리고 행복한 그 순간이 ‘화양연화’라는 영화 제목처럼 내 인생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일 것이라는 확신도 여렴풋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20년 가까이 지내오면서 이민 생활로 힘든 시기도 있었고 뜻대로 되지 않았던 때도 많았지만 이기적인 생각들을 절제하고 서로를 위해, 가족을 우선시하며 희생해왔기에 이 아이들의 웃음소리 만큼 행복하고 안정적인 시간이 찾아온 게 아닐까 싶다. 작년 가을 친정에 들렀을 때 엄마가 보물상자처럼 건네준 박스에는 옛 추억의 사진들과 일기장, 그리고 편지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소중히 잘 간직해주신 엄마의 정성에 눈물이 핑 돌았다. 대학 시절 사진 속의 나는 꽤나 매력적이었고 열정적으로 삶을 헤쳐 나가던 흔적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은 살면서 바뀐 나의 세계관과 인생을 대하는 깊이의 차이인 것 같다.

엄마의 짐들 중에서 유독 애지중지하시는 몇몇 사진들이 있었다. 지금 봐도 모두가 참 행복해 보이는 가족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의 엄마는 며칠 전 아이들과 영화관을 나서던 나의 모습 만큼이나 행복해 보였다. 우리 4남매와 다정한 아빠가 옆에 계신 그 사진 속의 엄마는 더욱 아름다우셨다. ‘화양연화’는 특별히 여자의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딸이 연주해 주는 ‘Street Car’라는 곡을 들으며 엄마의 살아오신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지나 나와 우리 딸이 함께하는 순간을 감사하면서 앞으로 딸이 맞이할 빛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마음속에 상상하며 더욱 행복해진다.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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