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만파식적 萬波息笛] 집배원

2019-06-26 (수)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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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이라는 직업은 18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 업무 관청인 우정국이 설치되면서 생겼다.

당시 집배원의 공식 명칭은 체전부(遞傳夫)였는데 공식 모자인 벙거지를 쓰고 다닌다고 해서 ‘벙거지꾼’이라고도 불렸다. 편지 외에 소포를 부칠 때는 부지편(負持便)을 이용했는데 이를 나르는 사람은 비각(飛脚)이나 보발(步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작 보름이나 일했을 무렵 우정국 개국을 기념하는 축하 잔치가 열린 그해 12월4일 이른바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우정국은 폐지됐고 집배원들은 1895년 우체사가 생길 때까지 일을 쉬었다. 주소 체계가 정착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예를 들면 1898년 3월17일 소인이 찍힌 한 편지에는 ‘동관대궐전 좌포도청 행낭후곡 제삼와가 서향대문 김주사 댁 입납’이라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 주소를 풀어보면 동관대궐(창덕궁) 앞 좌포도청의 행랑을 지나 끝에 있는 기와집 가운데 서쪽으로 대문이 나 있는 세 번째 집 김주사 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옆집도 같은 서향대문의 김주사 댁이었고 이 집에 편지를 잘못 전달한 체전부는 파면됐다.

집배원은 먼 곳에 있는 사람의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가수 카펜터스는 ‘집배원 아저씨 부탁해요(Please Mister Postman)’라는 노래에서 실제로는 남자친구의 편지를 기다리지만 가사에서는 집배원을 서서 기다리고 이제 가려는 집배원에게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간청한다.

시인 문정희는 기다림을 넘어 아예 집배원이 되고 싶어한다. ‘가을 우체국’이라는 시에서 그는 ‘가을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다가/ 문득 우체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시는 ‘은빛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낙엽 위를 달려가/ 조요로운 오후를 깨우고/ 돌아오는 길 산자락에 서서/ 이마에 손을 동그랗게 얹고/ 지는 해를 한참 바라볼 수 있지’라고 노래한다.

이 정도도 시에서나 부릴 수 있는 사치일까. 전국우정노동조합이 집배원 인력 증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사상 첫 파업에 나서는 우정노조의 요구사항은 “중노동 과로로 죽어가는 집배원을 살려 달라”는 것이다. 집배원은 올 들어 벌써 9명, 지난해에는 25명이 갑자기 사망했고 우정노조는 이를 과로사로 규정했다.

과로사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사람이 우선이라는 정부가 엉뚱한 데 돈을 펑펑 쓰지 말고 꼭 필요한 곳에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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