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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산조망대] “바람 참 좋다”

2019-06-21 (금) 윤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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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참 좋다”

서울 시내와 여의도를 잇는 마포대교(길이 1,400미터, 폭 10차선)는 진짜 ‘대교’다. 시애틀 다운타운과 노스 시애틀을 잇는 오로라 브릿지(890미터, 4차선)와는 모양도, 규모도 딴판이다. 연혁도 다르다. 오로라는 1932년 건설된 고물로 미국 사적지에 낀다. 마포대교는 2005년 확장 개통된 현대식 다리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악명 높은 ‘자살다리’다.

공식이름이 ‘조지 워싱턴 기념대교’인 오로라 다리에선 개통 이후 230여명이 51미터 아래 수로로 뛰어내려 그 중 50여명이 ‘성공’했다. 다리가 완공되기도 전에 한 구둣가게 주인이 투신자살 1호를 기록했다. 2011년 다리 양쪽 난간에 2.4미터 높이의 자살방지 철망이 설치된 후 투신사건이 뜸해졌다. 긴급 상담전화 6개, 자살만류 사인판 18개가 부착돼 있다.


본명이 ‘서울대교’였던 마포대교에선 지난 5년간 989명이 11미터 아래 강물로 다이빙했다. 전체 20여개 한강다리의 전체 자살시도자 2,575명 중 3분의1이 넘었다. 2012년 화려한 조명이 딸린 ‘생명의 다리’ 난간이 설치됐지만 자살시도는 16배나 늘었다.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살아보자”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등 자살만류 슬로건들이 난간에 즐비하다.

‘장미의 계절,’ ‘계절의 여왕’으로 칭송받는 5월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살의 달이기도 하다. 지난주 한국정부가 발표한 2019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전체 자살자 1만2,463명 중 약 10%인 1,158명이 5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그랬다(2009년 5월). 대체로 희망이 솟는 봄철(3~5월)에 많고 을씨년스런 겨울철(11~2월)에 적었다.

하지만 자살 사망자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꼬리표를 2003년 이후 13년간 달고 다니다가 2017년 리투아니아에 물려주고 2위로 ‘승진’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24.3명으로 전해 2016년의 25.6명보다 약간 줄었고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10년전의 31.2명보다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자살 선진국이다. 34개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인 12명보다 2배 이상 높다. 발틱해의 리투아니아(26.7명)에 간발의 차이로 2위를 달린다. 그 이웃 라트비아와 슬로베니아는 뚝 떨어진 18.1명으로 공동 3위, 노인국가인 우리 이웃 일본은 16.6명으로 5위다. 요즘도 한국에선 매일 36명, 40분마다 한명 꼴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자살은 미국에서도 국가적 이슈 중 하나다. 지난 2016년 총 4만4,965명이 자살했다. 한국과 달리 자살률이 증가추세다. 1999년 10.5명에서 2014년 13.42명으로 늘어났다. 하루 평균 12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전체 자살자 10명 중 7명이 백인남성이다. 자살시도는 여성이 남성보다 1.2배 많지만 실제로 자살 사망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3.5배나 많다.

땅덩어리가 큰 탓인지 자살률도 주별로 들쭉날쭉 한다. 뉴욕주는 복잡다단한 세계최대 도시 뉴욕을 끼고 있지만 자살률이 10만명당 7.81명에 불과한 반면 삶이 평화롭고 느슨할 것 같은 농촌 와이오밍주는 28.24명이나 된다. 미국인 자살자들 중 거의 57%가 총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한국과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선 농약음독 자살이 대세이다.

한국에선 자살을 시도했다가 병원에 실려 오는 환자 3명 중 1명(34.9%)이 자살시도 경험자이다. 또 “정말 죽으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라 도움을 얻으려고 했다”는 사람도 같은 비율이었다. 자살시도자 중 절반이 술 취한 상태였다. 자살 동기는 36%가 정신적 문제, 23.4%가 경제문제, 21%가 신체질환이었고 가정문제(8.9%), 업무상 문제(4%)는 뜸한 편이었다.

자살은 인구감소 손해만 끼치지 않는다. 당사자들의 미래 소득감소 추정액이 한국에선 연간 6조5,000억원, 미국에선 690억달러나 된다. 정부가 자살을 만류하는 진짜 속내일 수 있다. 마포대교 난간엔 “바람 참 좋다”는 멋진 슬로건이 붙어 있다. 자살시도자들이 시원한 바람을 쐬고 감정을 억제한 후 “살자”고 다짐하면 좋겠다. ‘살자’는 자살을 뒤집은 말이다.

<윤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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