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전쟁 69주년

2019-06-24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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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란은 1950년 6월 25일에 시작하여 1953년 7월 27일에 끝났다. 좁은 땅에서 만 3년 동안 한국을 도운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UN군과, 북조선을 도운 중공군과 무기로서 전적인 후원을 한 소련 사이의 전쟁이었다. 문자 그대로 3천리 반도를 피로 물 드린 처참한 싸움으로 쌍방의 전사자 250만이라는 세계 전쟁역사상 최고의 희생자를 낸 대 비극이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전쟁 전의 남북한 전 인구의 약 10%가 죽은 것으로 말하니 엄청난 희생이다.

그 당시 북조선의 영도자는 김 일성, 한국의 대통령은 이 승만, 그리고 UN군의 총사령관은 유럽전쟁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이다. 그 해 6월 25일은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한 일요일 아침이었는데 탱크를 앞세운 북조선군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 아무런 전쟁 준비가 없었던 남한의 허를 찔렀다.

군대의 수도 적고 무기도 빈약한 한국군은 밀리고 밀려 대구까지 후퇴하여 겨우 경상남도만이 남아 전국이 공산군의 손에 들어가는가 싶었는데 미군의 참전으로 겨우 전선을 막아 차차 전세를 회복하여 북진이 이어지고 한 때는 평안북도까지 올라갔으나 중공군이 가세하여 인해전술로 밀어 닥치는 바람에 다시 남으로 밀려 38도 선에서 휴전 조약을 맺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전쟁을 북에서는 ‘조국 해방 전선’이라 부르고, 한국에서는 흔히 ‘6.25사변’이라고 부른다. 트루만 미 대통령은 “소련은 한 반도에서 성공하면 다음 지역으로 차츰 침공을 계속할 계획이다.”고 선언하고 미군 개입의 의미를 밝혔다. 즉 미군의 참전은 북한군을 막으려는 의도보다는 공산주의의 세계 팽창 전략을 막으려는 데에 있다고 본 것이다.

전쟁의 양상이 처음에는 방어에 급급했는데 미군은 차차 이 기회에 북한을 몽땅 해방해 버리자는 방향으로 전쟁의 목적을 선회하였다. 당시의 중국 지도자 모택동(毛澤東)은 “만일 미군이 중국 땅까지 들어오면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그 경우 소련이 유럽에서 핵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트르만 대통령은 북진 강경론자인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였다.

정전의 분계선을 걷는 데에서 남한이 종래의 땅보다 약 1500 스퀘어 마일을 더 차지하는 결과가 생겼다. 남북 시민의 희생자는 세계 제2차 대전시의 전 세계 희생자보다 더 많다는 엄청난 비극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것이다.

유럽의 발전사를 연구한 고고학자(考古學者)들은 국가 형성이 정복자들에게 의한 것이 아니라 잘 살기를 바라며 좋은 땅을 찾아간 농업 이민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류의 역사 발전이 힘에 의한 것이 아니고 평화로운 농민들의 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오늘의 세계에도 깊은 교훈을 준다. 억세고 강한 자가 이기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부드럽고 평화로운 자가 승리하게 마련이다. 동물계의 진화과정에서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은 진리가 아니다. 강한 짐승은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약한 동물들이 오히려 더 활발하게 번식한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사상을 한 마디로 사티아그라하(Satia graha) 라고 말하는데 ‘사티아’는 사랑, ‘그라하’는 힘을 뜻한다. 킹 박사 자신은 이 말을 ‘사랑의 힘’이라고 해설하였다. 평화로운 정의사회, 진정한 민주주의는 사랑의 힘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이 킹 박사가 평생 외친 메시지였다. 지구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쟁문화가 평화문화로, 증오의 수레바퀴가 사랑의 수레바퀴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연간 군사비로 8,000억 달러란 천문학적인 돈을 책정하고 있다. 전쟁 종식은 시급한 인류의 과제이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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