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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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365개의 선물

2019-06-21 (금)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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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 꽃이 지지 않는 곳. 내가 사는 버클리는 늘 ‘날씨천국’이다. 미국의 타 지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의 연속이다. 오죽하면 그 흔한 ‘에어컨’ 하나 없을까. 선풍기 없이도 그럭저럭 여름을 지낼 수 있다 하면 믿어질까.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주말부터 연일 폭염이 이어지더니 6월에 더워야 80도이던 기온이 90도를 넘겼다. 최고기온 갱신 뉴스마저 이어지고, 정전까지… 3-4일이었지만 그동안 잊고 살았던 ‘무더위’로 밤잠을 설쳤다.

한국의 무더위가 기억난다. 타 지역보다 선선한 부산이었지만 여름은 우리 식구를 ‘타잔’으로 만들곤 했다. 모시 바지와 민소매를 너머 ‘상의실종’ 패션의 할머니에게 언니와 난 ‘할매~~ 쫌!’을 연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옥상 위 평상에 오손도손 모여 수박 먹던 기억, 달팽이 모양 초록 모기향 냄새, 그리고 빨래줄 가득 널린 뽀송뽀송 하얀 메리야스 비누향. 소낙비가 몰고 오는 찐득찐득하고 비릿한 바다냄새.

90도를 훌쩍 넘긴 날씨는 밤까지 이어졌다. 옷장을 열심히 뒤져 미국생활 8년동안 한번도 꺼내 입지 않았던 여름 옷들까지 한자리에 총집합시켰다. 우리집에 단 하나뿐인 박스 속 선풍기를 꺼내어 이리저리 옮기며 이 더위에 집 안 어디가 더 시원할까 동분서주. 평소 먹지 않던 아이스크림을 찾았고, 시원한 수박 한 통이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더워 죽겠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그러다가 80도 정도로 떨어진 날, 무서운 폭염 뒤라 그랬는지 견딜 만했고, 심지어 “시원하다, 어제보다 시원해서 다행이다” 하며 감사의 마음마저 가지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더위에 짜증을 부렸을텐데 말이다. 그저 여느 평범한 여름 하루였는데…

누군가 present(현재)가 present(선물)라 했던가. 날마다 내게 주어지는 ‘오늘’이 ‘선물’인데 난 감사보다는 불평일 때가 많고, 나에게 주어진 것은 망각한 채, 더 가지지 못하고 성취하지 못해 좌절했고 조바심쳤다. 깊은 밤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한다. 폭신한 침대에 다리 쭉 뻗어 누울 수 있는 일 또한 얼마나 감사한가. ‘오늘’이 ‘선물’이었음을 깨닫는 열쇠는 ‘감사’가 아닐까. 내일 나에게 주어질 ‘오늘’이자 ‘365개의 선물’ 중 하나가 될 present를 감사로 기대해본다.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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