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사인류의 자취를 더듬어 장구한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2019-06-14 (금)
작게 크게

▶ 사우스림에서 노스림을 향해 벼랑도 어둠이 삼킨 밤 10시

▶ 24마일 시간탐험은 시작되고 과연 나는 빛을 다시 볼런지…

선사인류의 자취를 더듬어 장구한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North Kaibab Trail의 모습.

[산행가이드] Grand Canyon ‘Rim to Rim’ Traverse

수년 전에 가입하여 함께 등산을 해오고 있는 Sierra Club에서 Grand Canyon 국립공원을 횡단하는 산행계획이 잡힌다. 난 오래 전(2007-11-11)에 Grand Canyon에서 하이킹을 한 일이 있다. South Rim의 South Kaibab Trail로 Colorado강까지 내려갔다가 Bright Angel Trail로 올라오는 당일 하이킹으로 약 16마일에 10시간 내외가 걸린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지난 후인 2015년쯤에 친근한 등산동료 6명이 의기투합하여 Grand Canyon을 남에서 북으로 횡단한 후에, 당일로 다시 또 남으로 돌아오는, 이른 바 ‘Rim2Rim2Rim’을 하기로 하여 산행일을 잡는다. 그러나 날짜가 임박하였을 때, 팀원중 한 사람이 대상포진을 심하게 앓는 사태가 발생하고, 따라서 Rim2Rim2Rim처럼 힘든 등산을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중론이 일어난다. 그런데 당사자는 기어코 산행에 동참하겠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만일의 경우를 우려하여 산행자체를 취소한다.


그후 이렇다 할 기회가 없이 지냈는데, 반갑게도 이번에 이 산행계획이 나온 것이다. 참가가 확정된 인원은 10명이다. Peter, Ignacia, Miriam, Naresh를 제외하면, 나머지 6명 모두 우리 한인으로, 제이슨, 써니, 태이, 수잔, 일우 그리고 나 이다. 힘든 산행에 더욱 적극적이고 강한 우리 한국인 멤버들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여성이 넷이다.

코스는 South Rim에서 출발하여 North Rim으로 갔다가 다시 South Rim으로 돌아오는 것인데, 숙박을 하려면 미리 미리 퍼밋을 받아야 한다는 공원의 규칙이 있어, 그냥 무박으로 48마일의 거리를, 아마도 24시간 내외에 걸쳐, 그냥 계속 걷는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날짜가 다가오면서, 계획 자체가 다소 무리인 느낌이 강해서인지, Peter, Ignacia, Naresh는 왕복이 아닌 편도의 하이킹을 원하는 쪽으로 기운다. 마침 Arizona지역에 거주하는 Ignacia의 여동생 한 분이 North Rim(8250’)에서 산행을 마치는 멤버 4~5인에게는 South Rim(6840’)으로 이동하는 교통편의를 제공한단다. 산행이 임박하여서는 이윽고 왕복산행팀과 편도산행팀으로 갈린다.

일우와 나도 얼마간의 갈등 끝에 편도로 그칠 것임을 천명한다. 왕복팀은 제이슨, 써니, 제이, 수잔이다. 제이슨과 써니는 이미 ‘Rim2Rim2Rim’ 하이킹을 각기 세번, 두번씩 했던 경험이 있다. 왕복산행을 하는 멤버들의 형편에 맞추어, 토요일 밤에 출발키로 한다. 단, 현장분위기를 익힐 겸, 일단 토요일 16시에 Bright Angel Trailhead에 다함께 모이기로 한다.
16시에 10인 모두가 모여 Bright Angel Trailhead의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주변 경치를 보며, 우리가 내려가야 할 길, 우리가 건너가야 할 North Rim 쪽을 살핀다. Peter는 내일 날이 밝은 후에 Colorado 강까지만 내려갔다가 South Rim으로 다시 올라올 것이란다. 결국, Rim2Rim 하이킹이 5명, Rim2Rim2Rim하이킹이 4명으로 압축되었다. 22시에 다시 만나 하이킹을 시작키로 하고 헤어진다.

22시에 전원이 다시 모인다. 어두운 밤에 보는 Trailhead 주위는 낮과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모두 헤드램프와 트레킹폴을 다 갖추었다. 드디어 Bright Angel Trailhead(6840’)를 출발, 하이킹을 시작한다(22:04). 계속 내려가는 이 Bright Angel 길의 일부는 선사인류에 의해 조성되어진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4.5마일 아래쪽에 있는 Indian Garden(3800’)에 일년 내내 물이 흐르는 Creek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인 탐광자들이 1800년대에 이곳에 왔을 무렵에는 Havasupai 부족들이 이 Indian Garden에 거주하였는데, 백인들이 이 루트를 좀 더 보완한다.

1890년에 광맥을 찾아온 Ralph H. Cameron이란 사나이가 이곳에 정착한다. 이 곳의 ‘채광권(Mining Claims)’을 확보하고, 이 루트를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 1903년이다. 국립공원관리국에서 1928년에 이 Trail의 관리권을 획득하기까지, 그는 1인당 $1의 통행료에다 Indian Garden의 식수와 건물사용료를 추가하여 25년간이나 적잖은 요금을 부과한다.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Colorado강까지 트레일이 이어진 것이 이 시기의 일이었고, 그가 이 루트를 ‘Bright Angel Trail’로 명명한다. 나중에는 상원의원으로도 활약한다. 결국, Ralph H. Cameron은 ‘채광(採鑛)’ 아닌 ‘관광(觀光)’이란 노다지 금맥을 향유했던 셈이다. 매년 500만명이 찾는다는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있는 길로 매년 수천명이 이용한다.
선사인류의 자취를 더듬어 장구한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IMAX영화‘Grand Canyon - The Hidden Secrets’에 나오는 Colorado River 탐사팀.(1869년의 John Wesley Powell 일행의 탐사를 1984년에 옛 그대로 재현함)

깜깜한 밤에 등산을 시작했기에 주변의 경관은 볼 수 없다. 헤드램프로 동굴처럼 어둠을 뚫고 내려가자니 오로지 내 몸 가까이의 길과 한쪽 절벽면만이 보인다.

2개의 암벽 터널을 통과하고 한 참을 지난 뒤에 Restroom을 가리키는 작은 팻말이 헤드램프의 불빛에 드러난다(22:51). 1 ½-Mile Resthouse(5720’)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밤이 주는 차분한 분위라서인지, 아니면 길의 왼쪽은 주로 가파른 벼랑의 형세라서 그런지, 대원들 모두가 대체로 묵묵히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 4.5마일 지점에 이른다(12:32). 이곳이 Indian Garden(3800’)이다. Creek이 있고, Visitor Center와 캠프도 있다. Phantom Ranch가 5마일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판이 있다.

Grand Canyon Rim2Rim 하이킹의 개요를 살펴 본다. South Rim(6840’)과 North Rim(8250’) 사이의 23.9마일을 횡단하는 것인데, 중간에 Colorado 강의 다리를 건넌다. 보통은 North Rim의 North Kaibab Trailhead를 출발하여 South Rim의 Bright Angel Trailhead에서 하이킹을 마친다. 이 경우의 순등반고도가, 이와 반대의 경우, 즉 South Rim의 Bright Angel Trailhead에서 시작하여 North Rim의 North Kaibab Trailhead에서 마치는 경로에 비해 덜하다는 강점이 있다. 즉 Colorado 강의 고도(2440’)를 기준으로 보면, South Rim(6840’)은 4400’ 의 고도차가 있는데 비해, North Rim(8250’)은 5810’의 차이가 있다. 즉, North Rim을 내리막으로 하고, South Rim을 오르막으로 하는 하이킹이 다소 더 용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개의 하이커들은 North Rim에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선사인류의 자취를 더듬어 장구한 역사속으로 들어갔다

South Rim에서 본 Grand Canyon.

그런데 South Rim에서 시작하더라도 Bright Angel Trail이 아닌 South Kaibab Trail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3마일쯤 거리가 단축되나, 중간에 물이 없고 그늘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다소 어렵다는 South Rim의 Bright Angel Trailhead에서 23.8마일, 순등반고도 8420’의 하이킹을 시작한 것이다.


Rim2Rim 구간에는 Indian Garden Campground, Bright Angel Campground, Cottonwood Campground의 3개의 캠프와, Dorms & Cabins시설인 Phantom Ranch가 있다. 캠프를 이용하면서 하이킹을 하고자 하면 별도의 퍼밋을 받아야 한다. Phantom Ranch를 이용코자 하면 1년쯤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듣기로는 2019년부터는 매월 추첨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래 저래, 야영을 하지 않으면 퍼밋을 받거나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되니, 지금 우리의 이 하이킹처럼 무박의 당일산행이 훨씬 간편하다.

앞서서 걷던 Ignacia가 나를 부른다. 헤드램프의 불빛 아래, 전갈 한 마리가 있다(01:25). 제법 몸집이 크고 단단해 보인다. 단조로운 우리의 행군에 잠시 작은 화제가 된다.
Silver Bridge라는 현수교가 어둠속에 나타난다(02:19; 8.8 마일). 이 다리로 Colorado 강을 건넌다. 이곳을 이미 여러 차례 하이킹을 한 바 있는 제이슨이 앞장을 서서 칠흑의 어둠을 헤치며 거침없이 나아간다. Phantom Ranch에 도착한다(02:41; 9.6마일; 2550’). 불이 꺼진 채 문이 잠긴 건물 옆에 수도시설이 있고 피크닉 테이블이 있다. 그러고 보니, Bright Angel Campground는 밤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Phantom Ranch는 1922년에 여류건축가 Mary Colter(1869~1958)에 의해 설계되고 건립되는데, 이 자리는 그 이전에도 토착민들이 이용하던 장소였고, 1869년에 Colorado 강을 탐사했던 John Wesley Powell도 이 자리를 거쳐갔는데, 1913년에는 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이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 이후로는 Roosevelt Camp로 불렸으나, 건물이 들어선 다음에 Mary Colter의 주장으로 Phantom Ranch로 명명된다. 연중 운영되며, 약 90인이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Dorms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남녀가 서로 분리된 공간에 묵는다.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예약자에겐 저녁과 아침 두 끼 식사를 제공하는데, 노새를 이용하여 South Rim으로 부터 매일 식자재를 운반해 온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Bright Angel Trail이고, 이 다음 부터는 North Kaibab Trail이라 부르는 것 같다.
갈 길이 멀기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다(03:05). 지금 우리는 Bright Angel Canyon의 하류에 들어와 있고, 이제부터 이 캐년을 흐르는 Bright Angel Creek을 따라 그 상류인 북동쪽으로 거슬러 오르는 North Kaibab Trail의 여정에 들어간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Bright Angel Canyon & Creek을 가는 구간인데, 이 Trail의 명칭이 ‘North Kaibab’으로 오히려 바뀌는 연유를 모르겠다. Phantom Creek은 북서쪽에서 이 Bright Angel Creek으로 유입되는 지류이고, 이 Bright Angel Creek은 Colorado River로 유입되는 물줄기이다.

정진옥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