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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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오늘도 나는 거울을 본다

2019-05-24 (금) 12:00:00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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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머리에 투구를 쓰신 줄 알았어요.” 언니 손재주의 결과는 고스란히 형부의 헤어스타일로 표현됐다. 미국생활 초기, 생활비 절감 목적으로 형부 머리를 언니가 최선을 다해 한 올 한 올 정성껏 다듬었지만 웃픈 상황이 벌어진 거다. 언니 음식 솜씨는 안타깝게도 미용 솜씨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형부는 미용실 고객이 됐다.

미국에서 만난 주위 사람들이 남녀불문 웬만한 미용기술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리깡’이라 불리는 헤어커터로 집에서 머리를 손질한다는 것. 거울을 이리저리 보며 쓱싹쓱싹 머리카락을 자른다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미국 와서 놀랐던 일들 중 하나는 한국에 비해 미용비가 꽤 비싸다는 것이었다. 미국 오기 전 미용기술이라도 좀 배워올 걸.

내 머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 이것저것 잴 것 없이 사랑에 푹 빠져 버린다는 그 청순함, 그리고 여신같은 자태를 뽐낸다는 그 긴 생머리. 어느 노래 가사와 같이. 하지만 현실은… 헤어 관리에 별 관심이 없어 원래 1년에 한번만 미용실을 찾는 나. 미국에서 미용실 가는 돈이 아깝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이유로 머리를 기른다. 바로 2년 전 시작된 헤어 도네이션. 우연히 도네이션 영상을 보고 “그래! 나도 동참해보자”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가발을 만들 12인치 이상의 긴 머리카락을 보내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았다. 귀신같이 길어진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웅큼씩 빠지는 머리카락과 머리를 말리며 벌이는 긴 사투. 치렁치렁 긴 머리를 감당할 수 없어 늘 질끈 묵을 수밖에 없는 감당불가 촌스러움의 극치다. 하지만 기부를 통해 내 머리카락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내 머리카락은 아픈 아이들을 위해 가발을 만드는 후원 단체에 기부되었다. 이쁘게 잘 만들어져서 전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벅찼다.

건강한 머리카락을 만들기 위해 헤어 영양제도 바르며 나름 노력한다. 조금 더 길고 예쁜 가발을 만들기 위해 나의 “미”도 약간은 포기하고. 기부할 머리카락이 길어질수록 내 머리카락은 짧아진다. 머리카락을 기르며 나를 건강하게 가꾸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위안과 기쁨을 주는 일이 됨을 깨닫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일이 타인을 사랑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으로 오늘도 나는 거울을 본다.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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