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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피오나 공주의 성

2019-05-23 (목) 12:00:00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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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에서 A를 받지 못하는 아시안(Asian)을 가리켜 비시안(Bsian)이라 부른다고 딸이 말했다. 아시안들이 자녀들의 성적과 대학 입시에 과열되는 면을 꼬집어 풍자한 듯해서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왠지 불편한 말이었다.

최근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학 입시 비리 스캔들로 떠들썩했다. 유명 할리우드 연예인들을 포함한 부유층 학부모 30여명이 자녀들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키 위해 저지른 다양한 부정 행위 등이 잇달아 언론에 공개됐다. 뇌물을 주는 것은 물론 시험에서 특혜를 받기 위해 허위 학습장애 진단을 받는가 하면 스타 운동선수로 보이기 위해 사진을 합성까지 하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윌리엄 싱어는 얼마 전 인기있었던 드라마 ‘SKY캐슬’에서처럼 거액의 돈를 주고 학부모가 고용한 입시 코디네이터였다.

“아빠, 나는 이 다음에 성처럼 크고 멋진 곳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하던 딸에게 장난으로 받아치던 남편, “그래! 우리 딸은 공주니까, 우리 피오나 공주~” 피오나의 못생긴 모습을 떠올리며 약올라 하던 딸. 그렇다! 성에 산다고 해서 모두 행복할 수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데.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 그들만의 성에 살게 하면서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려던 이기심과 잘못된 판단은 결국 자식뿐 아니라 온 가족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도 입시준비 학부모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각종 학원에서 제공하는 대입 설명회와 학교 엄마들의 정보 모임에 참석은 기본, 저녁식사도 거른 채 두 시간 넘게 들어야 하는 학교의 대학 설명회에도 빠짐없이 가야 한다. 커피 마시러 나간 또래 친구들 모임에서도 온통 대학 입시와 성적에 관한 얘기들로 분주하다. 학교 성적에 늘 예민한 우리 딸 말로는 과로로 쓰러지는 아이들이 더러 있어서 시험기간에는 자주 응급차가 학교로 온다고 했다. 어려운 AP 숙제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옆에서 애태우는 엄마들도 함께 수면부족에 시달린다.

대학 진학이 인생의 큰 과제이긴 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부모이자 인생의 선배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딸의 선택이 내가 꿈꾸던 멋진 왕자가 아니라 슈렉이라 할 지라도 딸의 가치있는 선택임을 믿고 여유있게 기다려 주고 싶다. 우리 피오나 공주가 만들어 갈 자신만의 아름다운 성을 기대하며.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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