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말 한마디의 중요성

2019-05-18 (토)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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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즌이다. 나도 지난 주 금요일에는 둘째의 대학원 졸업식에 다녀왔고 돌아오는 월요일에는 큰 애의 대학원 졸업식에 갔다 와야 한다. 다음 달에는 교육위원으로서 참석해야 할 고등학교 졸업식들이 계속 줄지어 있다.

이번에 둘째의 졸업식에 다녀오면서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애가 고등학교에 다닐 당시였다. 11학년 때 AP 물리 과목을 수강했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이 꽤 어렵게 가르치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둘째는 11학년 내내 그 과목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다. 잘 안 풀리는 숙제를 붙들고 밤늦게까지 쩔쩔매던 적이 허다했다. 시험 성적도 형편없이 낮게 나온 적이 많았다. 둘째의 그 과목 학년말 성적은 결국 A였지만 그만큼 어려운 과목은 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다음 해 둘째가 12학년에 올라가 대입 원서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그 물리 선생님을 보게 되었다. 그냥 인사하고 지나가려 하는데 선생님이 물으셨다. 왜 아직 자신에게 대학 입학 추천서 요청을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둘째는 자신이 물리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형편없지는 않았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표현은 사실 그 선생님으로서는 굉장한 칭찬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지 못했던 칭찬을 들었던 둘째가 추천서 부탁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도 물리학을 계속 공부해 이번에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이 여실히 증명된 예다. 그 때 그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없었다면 둘째는 10년 동안 물리학을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다른 과목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에 존경하던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격려의 말 한마디가 이 아이의 전공 분야와 장래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이다.

그런데 말 한마디가 주는 영향은 이렇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 한마디 잘못 뱉어 평생을 후회하기도 한다. 오히려 말을 잘해서 득이 되는 경우보다 실수해서 해가 되는 경우를 더 많이 본다. 칭찬에는 오히려 인색하고 비판이나 흉보는 것에 서슴없는 것을 종종 본다. 그것은 나처럼 말하는 것이, 변호사라는 직업 상 그리고 교육위원으로서의 공직 상 일상적인 사람은 더욱 그렇다. 회의 할 때도 나름대로 조심한다고 하면서도 실수를 한다.

특히 나보다 아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개 석상에서 보고를 할 때 웬만해서는 노골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삼가야 하는데 나름대로의 공명심이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자제를 못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실수를 바로 깨닫고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기도 하지만 종종 자존심이나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적절한 때를 놓친다. 나에게 보고하는 사람과 나 사이 에는 그저 주어진 역할의 차이가 있을 뿐 내가 더 잘 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실수는 말뿐 아니라 이메일, 문자, 그리고 소셜미디어에 댓글을 달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 특히 두고두고 그대로 흔적이 남는다. 그래서 감정이 격할 때 이메일, 문자를 보내거나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는 것을 삼가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메일을 꼭 보내야 한다면 수신인 주소를 일단 비워놓고 글을 다 작성한 후 그대로 어느 정도 놔두었다가 나중에 감정이 좀 가라앉을 때 다시 한번 검토해보라고 한다. 그렇지 않고 바로 보낼 때 후회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이 격해진 상태로 말을 할 때도 하나에서 열까지 속으로 먼저 세어보고 하라고 했다. 열까지 세는 동안 감정이 좀 가라앉도록 말이다. 말조심에 있어 적절한 성경 구절을 하나 인용한다. 야고보서 3장에 나온다.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작은 혀의 잘못이 가져다줄 수 있는 큰 낭패에 대해 우리가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경고의 말씀이다.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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