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조카면 족하다

2019-05-17 (금)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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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보, ‘조카 바보’다. 조카 바보인 이모, 고모를 겨냥한 마케팅이 한국에서 한창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이 유아용품 시장의 큰 손이기 때문이란다. 골드 이모, 골드 고모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고, 심지어 조카와의 일상을 다룬 TV예능마저 방영되고 있으니 세상에 나만 ‘바보’는 아닌가 보다.

5월은 나를 바보로 만들어준 첫 조카가 태어난 달이다. 부모님이 오실 수 없는 상황이라 미국에 머물던 내가 가족분만실에서 고스란히 출산을 지켜보아야 했다. 미혼의 여동생이 언니의 출산을 지켜보는 일. 이를 꽉 깨물며 분만실에 들어갔던 나. 드디어 조카의 모습이 보이고 탯줄을 자를 시간. 첫아이의 탄생에 눈물·콧물 범벅이 된 형부는 갑자기 탯줄을 못 자르겠다 선언했다. 열 달을 함께한 엄마와 아기를 갈라놓는 것 같아 할 수 없다고… 덕분에 나는 조카의 탯줄까지 자르게 된 용감한 이모가 됐다. 그래서 조카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인지도…

48시간을 진통했던 언니와 함께 형부와 나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미국병원 입원이 처음이라 낯설고, 급박한 상황 가운데 우린 ‘뭉쳐야 산다’고 생각을 했다. 언니의 분만 이후 우리는 지인이 보온병에 담아준 미역국을 나눠 먹었다. 그 순간 당황스럽게도 언니가 아닌 내가 구토를 하고 말았다. 출산의 고통을 나눈 동생이랄까. 뿌듯함마저 느끼게 했던 그날. 이후 언니는 모유가 잘 나오지 않아 늘 유축기로 짜내야 했다. 병원에서 준 수동 유축기로 언니, 형부, 나 셋이 돌아가며 땀을 뻘뻘 흘리며 유축하던 일은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수소문하여 병원용 자동 유축기를 빌려와 유축을 하던 날, 우리는 천국을 맛보았다.

젖을 잘 물지 못하는 조카로 인해 유축부터 수유까지 ‘뭉쳐야 사는’ 우리 모두는 밤잠을 설쳤다. 밤새도록 냉동된 모유를 중탕하여 조카에게 먹이고, 몇번의 젖병 소독까지 끝낸 나는 식탁에 앉아 동트는 아침을 꽤 오랫동안 맞이해야 했다. 조카는 어찌나 예쁜지 나의 피곤은 온데간데없고 그 아침들은 늘 행복했다. 노동(?)후 밥맛은 어쩜 그리 꿀맛인지 늘 고봉밥에 수유 중인 언니보다 더 많이 먹어 댔다. 며칠 전 조카는 생일을 맞이했다. 난 축하노래를 부르며 감격에 겨워 대성통곡을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조카는 고개를 갸우뚱. 그러나 난 여전히 행복한 조카 바보. 조카면 족하다.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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