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투고] 5.18과 김대중

2019-05-17 (금) 계용식/SF CBMC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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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70년동안 대한민국에 혁명과 민주화운동이 있었는데 그중 딱하나 정리가 될 기미가 없는 운동이 5.18민주화 운동이다. 필자가 해병대에서 제대 직전 여러 도시에서 새로 출범하는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데모가 전국에서 일어난 후에 해병대는 부산과 대구에 진압군으로 내려가 영남대등 학교를 접수하였고 공수특전단은 광주의 전남대학등의 학교에 진압군으로 진지를 차렸다. 헌데 광주는 데모가 격해지다가 경찰서의 무기고가 시민들로부터 털려서 시청에 시민군이 칼빈총을 가지고 진압군에게 항전의지를 보이며 저항하였다. 광주는 타 도시의 데모와는 달리 총을소지한 시민군들로 인해 군부에서 심각하게 대응하였는데 군부가 시민군에게 투항하라고 알렸지만 시민군은 투항을 하지않았고 그후 군부는 진압하며 발포로 인해 사상자와 심한 부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여기까지는 우파가 보는 역사이다. 그리고 우파가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인정하지않는 배경은 경찰의 무기를 무법으로 탈취하여 정부에 대항하여 민주화라는 혁명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남쪽주민들과 좌파는 시민군의 발포로 시작되었으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외구(서울을 비롯하여 호남을 뺑둘러싼 모든 지역)가 침략하여 무자비하게 주민을 짖밟았고 이 차별은 조선시대서부터 지난 군사정권까지 계속되어 우파의 침략으로 인해 총을 들고 대항하여 싸울 수 밖에 없었기에 모든 책임이 우파의 원죄로 확신한다.

여기서 방향을 바꾸어 동남쪽나라에 PK와 TK라는 또작은 나라가 서로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공존하고 있는데 TK에 비해서 PK 는 항상 찬밥 신세이었다. 혼자힘으로는 상대를 할 수 없음으로 남해안 고속도로 달려가서 조선 때부터 항상 한맺혀서 살고있는 서남쪽나라 시민들과 그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촛불로 탄생한 문정권이기에 정부에서 발표하는 모든 성명서에서 광주정신을 소중히 받들고 모시고 산다.

최근의 역사에서 가장 고난과 핍박을 이기고 탄생한 김대중 정권을 심도있게 관찰하자. 군사정권 이후의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 섰지만 한국의 경제를 완전히 바닥으로 내몰았을때 김대중 정부가 우파와 손을 잡고 들어섰는데 정적인 김종필과 이어서 박태준을 국무총리로 앉히고 친일본정책으로 일본의 최첨단기술을 원활하게 도입하여 삼성과 LG와 현대가 세계적인기업으로 탄력을 받고 일어설 수 있게 했다. 또 이규성와 같은 경제전문가들을 경제부총리로 기용하여 김영삼 정권이 물려준 IMF의 고난의 행군을 헤쳐 나올 수 있었고 온국민이 소지하고 있던 약 225톤의 금을 자발적으로 모아 빚잔치를 하면서 IMF위기를 벗어났다. 이때 박세리가 US Open에서 우승하며 국민에게 힘을 보탰고, 공단에서 일하던 젊은여성들은 새벽부터 밤12시까지 꼬박 일을 하여도 힘들지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앞으로 전개되는 그들의 인생에 확실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2002년 임기를 마칠 때에는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올라 대한 젊은이들은 구호 “꿈은 이루어진다” 힘을 내면 모든 것이 우리 손 안에 다 들어올 수도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문 정권은 분노와 분열의 정치로 남은 임기를 적페청산이라는 정치보복을 멈추려고 하지 않아 역대 제일 잔인한 정권으로 역사에 남을 것으로 본다. 문 정권의 자신감은 호남에 끈 하나를 대고 버티고 있는데서 나오는데 호남에서 등을 돌리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정권이다. 또한 우파들은 광주에 갈 때마다 두드려 맞지말고 정신집중하여 전라도민이 신뢰하고 따를 수있는 리더를 발굴하여 다시 한번 남도출신의 대통령이 선출되어 좌파와 우파, TK와 PK를 어우르는 정책을 펴 나가길 빈다.

<계용식/SF CBMC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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