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vs 하원’ 의 현주소

2019-05-16 (목) 박록 고문
작게 크게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하원의 싸움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하원은 트럼프와 트럼프 가족, 트럼프 사업,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다각도 조사에 착수한 후 관련 증언과 자료를 요구하는 집중포화를 멈추지 않고, 대통령은 “모든 소환과 싸우겠다”며 철벽방어를 선언했다.

각 상임위 별로 진행되는 조사의 이슈는 뮬러 보고서와 트럼프의 택스리턴에서 헬스케어와 이민, 에너지, 소비자 보호 등 행정부 정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워싱턴포스트 분석에 의하면 트럼프는 그중 20여건의 민주당 조사를 막고 있으며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최소 79건의 자료 및 정보 제출 요구에 불응으로 맞서거나 대응을 안 하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 측은 지난주에만도 하원의 주요 요청 3건을 모두 거부했으며, 이번 주 들어서도 어제 하원 법사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트럼프 조사 위한 자료 요청은 법사위의 ‘합법적 역할’이 아니라며 거부를 통보했다. 하루 앞선 14일엔 하원 소환을 무효화 시키려는 대통령과 이에 맞서는 하원의 첫 법정대결도 펼쳐졌다.


싸움의 중심은 뮬러 보고서 원본이다. 지난 8일 하원 법사위는 원본 제출 소환에 응하지 않은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의회모독을 적용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날 트럼프는 행정특권을 발동시켜 원본 공개를 정면 거부했다.

결의안이 이달 말경으로 예상되는 하원 본회의 표결에서 통과되면 의회는 소환장 집행을 위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정 투쟁이 트럼프 집권 이후까지 이어지면서 민주당이 승소한다 해도 너무 오래 걸려 패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법사위는 뮬러 보고서를 통해 대통령의 사법방해 혐의의 핵심 증인으로 드러난 돈 맥갠 전 백악관 법률고문에 대해서도 자료와 증언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자료 제출시한이 7일이었다. 트럼프는 맥갠에게 소환에 응하지 말 것을 지시했고, 민주당은 맥갠이 오는 21일로 예정된 청문회 증언에 불응하면 의회모독을 적용하겠다고 경고했다. 의회는 의회를 모독한 사람을 체포 구금할 수 있고 100여년 전 실제로 한 정부관리를 체포한 적도 있지만 지난 수십년 그 권한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젠 그 방법도 테이블에 올려질 수 있다.

행정부는 내일, 트럼프 택스리턴 소환 데드라인에도 직면해 있다. 하원 세입위원회가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지난 6년간의 납세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이 4월초. 므누신이 지난주 6일에야 “정당한 입법 목적이 결여된” 자료 요청이라며 거부를 발표하자 10일 세입위는 재무장관과 국세청장에게 17일까지 납세 자료를 제출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했다.

므누신이 어제 소환 불응을 시사했으니 어떤 납세자의 택스리턴도 요구할 권한을 가진 세입위는 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역시 장기간을 끌면서 연방대법원으로 갈 사안이다.

대통령이 행정특권을 발동한 것은 전·현직 참모들의 증언을 막고, 뮬러 보고서 원본을 포함한 하원의 자료 요청을 거부하는 한편 일부 기업이 의회 소환에 응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중 하나의 시도가 엊그제 법정에 섰다.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회가 트럼프의 전 회계법인에게 금융기록 제출을 요구한 소환장 집행을 막기 위해 트럼프측이 제기한 소송이다.

대출 받으려고 자산을 부풀렸다가 세금 피하려고 자산을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는 트럼프의 재정자료 확보를 위한 소환장은 도이체방크와 캐피탈원 등 여러 은행에도 발부된 상태다. 14일 재판은 자신의 재정과 사업 관련 조사들을 차단하려는 트럼프 시도에 대한 첫 법정 시험대인 셈이다.


트럼프의 변호사들은 의회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조사를 할 수 없다는 1880년의 판례를 내세웠다.(1924년에 번복된 판례다) 그러나 워싱턴 DC 연방지법 판사는 “대법원이나 하급심 어떤 주요 판결에서도 의회가 소환장 발부에 그 영역을 벗어난 것을 발견 못했다”라며 트럼프 측 주장에 회의를 표했다. 조속한 판결도 시사했다. 트럼프에겐 좋은 신호가 아니다.

하원은 전방위 조사가 헌법에 명시된 의회의 행정부 감독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정치적 탄환을 확보하는데도 열중할 것이다.

트럼프는 하원조사가 뮬러 보고서에서 만족한 결과를 못 얻은 민주당의 권한 남용 ‘대통령 괴롭히기’라고 분개하지만 ‘완전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모든 것을 막겠다”는 그의 비협조 전략은 “무엇을 숨기나”라는 의구심을 더 키우고 있다. 법적 근거도 허약한 것으로 지적된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관계는 같은 정당일 때도 긴장감이 팽팽한 밀당의 연속이다. 오바마도, 부시도 의회조사에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처럼 전면 거부의 철벽방어는 없었다. 그래서 ‘헌정 위기’의 경고가 나오고, 장기적 의회권한 약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싸움의 결말은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뮬러 보고서 케이스는 아직 공화당의 희망처럼 ‘사안 종료’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파적 옥신각신과 법적분쟁은 계속되겠지만 최종결론이 될 연방대법 판결은 2020년 대선 이전엔 나오기 힘들 것이다.

어쩌면 그 대선이 대법원보다는 더 의미 있는 심판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안의 맥락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우리도 그 심판에 책임 있게 참여할 수 있다.

<박록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