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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

2019-05-10 (금) 12:00:00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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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맨날 오빠만 좋아하고 나만 싫어해!”, “왜 나만 혼내고 미워해!” 요즘 부쩍 7살 조카가 자기 엄마에게 하는 말이다. 가끔은 갓난아이처럼 “응애” 울며 퇴행행동을 하기도 하고 급기야 공갈젖꼭지까지 찾는다. 나는 조카에게 “은지야! 우리 가족 모두는 오빠와 너 둘 다 사랑해! 다섯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너를 똑같이 사랑해” 하며 어릴 적 부모님이 해주시던 말을 조카에게 해주곤 한다. 하지만 조카는 “나만 더 사랑해주면 좋겠어!”라며 대성통곡하는 일이 다반사다.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끼어 있는 나는 둘째다. 태몽마저 사내아이였던 터라 할머니는 우리집 둘째는 분명히 아들이라 철석같이 믿으셨다고 한다. 갓 태어난 나를 발로 밀어낼 만큼 할머니의 그 섭섭함이란… 그 섭섭함은 고스란히 나의 투정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가족들이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어른이 된 나는 세상의 둘째들이 늘 안쓰럽고 조카의 투정이 공감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10살때까지 밤마다 이불에 지도를 그려 놓곤 하는 오줌싸개였다. 심지어 소아 방광염, 소위 오줌소태까지 종종 앓아 바지에 오줌을 싸버리는 일도 있었다. 급기야 엄마는 나를 데리고 비뇨기과를 찾았다. 소변 검사를 마친 의사는 엄마에게 “따님의 증상은 애정결핍인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셔야...” 난 속으로 너무 흐뭇했다. 늘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해주셨고 도시락 편지로 우리 세 남매뿐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부러움을 안겨준 엄마는 큰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날은 오늘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엄마는 병원을 나오자 마자 나를 데리고 백화점으로 향했고, 금색줄 빨간 십자가 목걸이를 함께 골랐다. 오직 나만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었고 둘만의 데이트였다. 백화점을 나오던 그날의 행복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이후 마술처럼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일은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지긋지긋한 야뇨증과 오줌소태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부모님께 늘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둘째인데 왜 그때는 사랑이 부족하다 투정만 부렸었는지… 엄마는 오늘도 내게 영상통화로 “사랑하는 딸, 오늘도 잘 지냈어!” 하신다. 어머니날이 다가온다. 엄마와 나 둘만의 데이트가 오늘도 그립다.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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