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뮬러의 긴 그림자

2019-04-18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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뮬러 보고서가 오늘 아침 일반에 공개된다. 전체는 아니다. ‘공개되어선 안 될 정보들’이 삭제된 편집본이다.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대배심 정보, 국가 기밀사안, 수사 중인 케이스 관련정보, 개인 사생활 침해 자료 등은 지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얼마나 편집되었던 간에 보통 소설 한권 분량인 4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워싱턴을 뒤흔들 것이 틀림없다. 다각도로 철저하게 검 증당하는 정부서류가 될 것이다. 백악관 참모들과 연방의원들, 언론인들, 그리고 관심가진 수많은 일반인들이 보고서를 탐독한 후 자신들 입맛대로 해석하고 인용하면서 논쟁도 격화될 것이다.

2016년 대선에 개입하려던 러시아와 트럼프 선거캠프간의 ‘공모’ 혐의와 러시아스캔들 수사를 막으려던 대통령의 ‘사법방해’ 여부에 대해 2년에 걸친 수사를 종결한 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제출한 최종보고서의 핵심이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 의해 작성된 4페이지짜리 요약본에 담겨 의회에 보내진 것은 지난 3월24일이었다.


‘공모’ 혐의는 입증하지 못했고, 사법방해 여부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한 뮬러의 결론과 함께 사법방해에 대해 ‘증거 불충분’이라며 사실상 무죄를 선언한 법무장관의 결정이 담긴 요약본은 당장 보고서 원본 공개를 요구하는 반발과 논란을 불렀고 결국 3주여 만에 편집본 공개로 이어진 것이다.

뮬러 보고서 결론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대통령의 사법방해에 대한 판단 유보다. 뮬러는 수사를 통해 사법방해 관련 양쪽 ‘증거’를 다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팩트’를 알아낸 것일까. 트럼프 반대자들은 사법방해를 “했다”고 주장하고, 바 장관은 “안했다”고 결정지었으며 특검팀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FBI국장을 해고하고, 증인들을 위협한 기본 팩트는 나와 있다. 그러나 법적 논쟁의 핵심인 ‘수사를 방해하고 무산시키려는 부패 의도’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고 타임지는 전한다. 기소여부가 상당히 어려운 결정이라는 뜻이다.

뮬러 특검은 바로 이 같은 어려운 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 심판자라 할 수 있다. 트럼프가 택한 정치적 지명자인 바 장관의 수중에서 이런 결정들을 지키기 위해 임명된 것이다.

바 장관이 뮬러 보고서와 관련해 신뢰를 잃은 이유가 사법방해에 관한 급한 결정이었다. 뮬러는 했다, 안 했다 양쪽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시사하면서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결론짓지도 않지만 면죄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판단을 유보했다.

만약 보고서에서 바 장관의 판단과는 반대로 뮬러가 사법방해 결정을 미국민들의 판단에 남긴 것으로 나타난다면 바의 ‘사실상 무죄 선언’은 그릇된 결정으로 굳어지면서 원본 보고서 공개요구가 더 강력해질 것으로 폴리티코는 분석한다.

뮬러 보고서에는 사법방해에 대해 특검 내부 논쟁요소들이 포함될 것이며 뮬러가 이 딜레마를 일련의 ‘어려운 이슈들’로 묘사했다고 바 장관도 요약본에서 시사했었다.


뮬러가 사법방해 판단 유보라는 자신의 결정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무엇이 뮬러를 멈추게 했는지는 오늘 공개되는 보고서에서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행동이 사법방해 ‘범죄’ 수준이 아니라고 결정한 이유에 대해선 바 장관 자신이 설명해야 할 것이다. 이미 뮬러 특검 팀의 일부는 그들이 알아낸 사실들이 트럼프에게 훨씬 더 나쁜 ‘두렵고 중요한 것’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뮬러가 ‘공모’에 대해 어떻게 수사했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만하다고 CNN은 지적한다. ‘공모’를 범죄라고 명시한 현행법은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아들과 사위를 포함해 수사 대상이었던 여러 트럼프 측근들에 대한 불기소 결정 이유도 주목할 만한 부분인데 이 대목은 사생활 보호 등을 이유로 상당부분 삭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 초조하게 기다려왔던 뮬러 보고서이지만 이번 공개로 ‘끝’이 아니란 것쯤은 누구나 안다. 보고서를 둘러싼 트럼프 대 민주당의 싸움은 다시 불붙고, 무엇을 어떤 이유로 어느 정도 삭제했는가의 편집 범위가 싸움의 강도를 결정지을 것이다.

민주당은 원본 공개를 요구한다. 여론의 84%도 원본 공개를 원한다. 법무장관이 거부할 경우 하원 민주당은 보고서 원본과 수사관련 자료의 소환을 강행할 것이다. 트럼프는 ‘무죄 입증’ 주장을 되풀이하는 한편 뮬러 수사 발단에 대한 수사 촉구로 역공을 취할 것이다. 이미 대통령의 트윗은 “수사관들을 수사하라!”고 불을 뿜고 있다.

민주당 주도 하원 상임위들은 트럼프의 재정에서 백악관 보안상태에 이르기까지 다각도의 조사에 착수했고, 특검수사에서 파생된 케이스의 수사와 재판들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러시아스캔들 관련 특검수사가 종료되면서 뮬러는 서둘러 뉴스조명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보고서의 파장은 앞으로도 몇 달 이상 계속될 것이다. 내년 대선까지 길게 드리워질 뮬러의 그림자가 워싱턴 정가에 긴 한파를 예고하고 있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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