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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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가슴에 묻은 아이들

2019-04-13 (토) 12:00:00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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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에 미국에 왔다. 준비되지 않은 이민에 얼이 빠진 채 남편 회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몇 달을 정신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막 중학교를 졸업하고 온 큰아들의 한국 친구 엄마들과 카톡방에서 고등학교 입학한 그 아이들의 학교 생활, 그리고 수학여행 계획과 비용들에 대해 얘기해대며 한국을 그리워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알아듣기 어려운 TV 뉴스에 배가 한 척이 가라앉는 게 보이며 자막에 ‘Korea’가 나왔다. 급히 한국 소식을 검색하자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이 타고 가던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가 있었다. 금방 구조되겠지 하고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상황은 너무나도 참담하게 변해 있었다. 배는 물속으로 완전히 잠겼고 그 안에 나오지 못한 아이들 수백명이 갇혀 있었다. 이역만리 먼곳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울어대며 뉴스를 지켜봤다. ‘세상, 세상에’ 하는 탄식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에어포켓에 대한 희망도 사라지고 그렇게 허무하게 수백명의 예쁜 아이들을 하늘로 보냈다.

그 뒤로 한참을 온 나라가 우울에 빠졌다. 나 역시 그 아이들과 또래인 내 아이를 볼 때마다 슬픔이 복받쳤고 예고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에 한참을 힘들어했다. 더 이상 세월호에 대한 뉴스를 볼 수가 없어서 고개 숙인 채 눈을 감았다. 그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한국에 가서도 희생자들의 분향소를 감히 찾지 못했고 침몰 직전 찍었다는 아이들의 동영상은 그 배가 물위로 다시 올려지고 뭍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보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홀로 애도하고 홀로 슬퍼하면서도 고개 들지 못하고 마주 바라보지 못했다. 그저 잊지 않겠노라 소리없는 약속만 하고 있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동안 비겁하게 고개 숙였던 나도 용기를 내어 그들과 마주보고자 한다. 떠난 아이들과 눈을 마주보고 그들과 그들의 남겨진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보려 한다. 오늘 산호세 한국 순교자 성당에서 ‘세월호를 타고 떠난 아이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5주기 추모 북 콘서트가 있다. 희생자 부모님들과의 간담회도 준비되어 있다 한다. 마주치기 두려워 피해 다녔던 커다란 슬픔을 용기내어 바라보고 가슴에 아이들을 묻고 다니는 그 부모들에게 뒤늦은 위로라도 전하고자 오늘 그곳으로 가려고 한다. 고개 들어 그 아이들의 웃음을 바라보려 한다.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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