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가 수놓았던 빈자리는, 연연히 고개 내민 여명이 채워
▶ 살 오르기 시작한 재첩국은, 상춘객에 또 다른 즐거움 선사
동트기 전 숙소를 나섰다. 광양에 도착해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새벽, 빛이 좋은 시간을 택해 청매실농원으로 향했다. 어둠에 덮인 사위가 동쪽부터 밝아올 무렵 차는 섬진강 하구에 다다랐다. 남해로 빠져나가는 섬진강을 거슬러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 다시 북으로 향했다. 이 길의 또 다른 이름은 섬진강매화로. 길의 오른편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강을 건너면 그곳은 하동 땅이다.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는 매화마을로 유명하지만 이곳은 개량 밤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보급된 곳이기도 하다. 고(故) 김오천씨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량 밤을 가져와서 보급했고 알이 굵은 새 품종의 밤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개량 밤을 국내에 처음으로 보급한 김씨의 며느리가 ‘광양의 아이콘’ 청매실농원을 일군 홍쌍리(76) 대표다. 홍 대표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학벌이지만 기자가 만나본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하나다. 홍 대표는 언변이 뛰어나고 논리가 정연한데다 기억이나 인용이 명확해 대화를 나누면 듣는 이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밀양이 고향인 홍 대표가 이곳에 살게 된 것은 젊어서 이 지방으로 시집을 왔기 때문이다. 그는 “시아버지는 내가 도망갈까 봐 아이를 둘 낳을 때까지 친정에 보내지 않았다”며 “한번은 친정아버지가 날 보러 왔다가 사는 꼴을 보고 밥도 안 드시고 울면서 돌아갔다”고 말했다.
고생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홍 대표는 “시아버지가 광산을 하다가 파산해 빚쟁이들이 몰려와 머리채를 잡는 통에 머리를 빡빡 깎고 살았다”며 “그런 몰골로 마을에 내려가면 사람들이 ‘상이용사가 내려온다’고 쑤군거렸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 난리 통에도 산을 가꾸고 매화밭을 일궜다. 노동과 고난의 거름을 먹고 자란 매화나무들은 이제 해마다 이맘때면 청매실농원을 하얗게 뒤덮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청매실농원을 찾았을 때는 오전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는데 이미 농원 안 공터에는 10여대의 차가 주차돼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았고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은 명당자리에 진을 치고 빛이 퍼져 사진이 잘 나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매실농원의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동이 터 올랐고 여명은 나뭇잎에 비산했다. 사진을 찍고 청매실농원을 빠져나온 기자는 허기를 채우려 ‘섬진강재첩진국’이라는 간판이 걸린 식당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오래된 맛집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시간에 문을 열었을 리 없어 그저 불이 켜진 집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난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재첩국을 주문하고 강현구(74) 사장에게 섬진강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강 사장의 억양이 뚜렷한 경상도 사투리라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광양 토박이란다. “그런데 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느냐”고 했더니 “학교를 강 건너 하동에서 다녀 말투가 그렇게 됐다”고 했다. 섬진식품 영농조합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그는 “담배 한 갑을 사려고 해도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하동으로 간다”고 했다.
이 집의 손맛도 예사롭지 않았고, 기자는 시원한 국물을 마셔가며 재첩에 대한 궁금증도 함께 챙겼다. 그는 “재첩 수확은 5~6월이 절정”이라며 “이때 잡은 재첩이 살도 많고 맛도 좋다”고 말했다. 강 사장에 따르면 이 일대 어업계 회원 54명 중 실제로 재첩을 잡는 사람은 20여명 남짓, 연 매출은 2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강 사장은 “재첩 채취량은 미미하지만 국이나 식사로 만들어 팔면 매출은 늘어난다”며 “9~10월에 종패를 상류에 뿌리면 이듬해 수확량을 늘리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 제철에도 격주로 수확하는 이곳 주민들의 자제력 덕분에 섬진강 재첩은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셈이다. 섬진강에서 재첩을 직접 잡아 끓여내는 이 집의 국은 역시 깊고 진했고, 뜨거운 국물로 몸을 녹인 기자는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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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광양)=우현석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