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먹은 벙어리
2019-04-09 (화) 12:00:00
정윤희 / 주부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일이다. 마트 계산대에 섰는데 캐시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하는데도 도무지 알아챌 수 없었다. 내 뒤로 줄 서있는 손님들은 빤히 나를 쳐다보고, 나는 창피한 마음에 귀까지 빨개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봉투가 필요하냐고 묻는 말이었는데 그 간단한 말조차 알아듣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것이다.
내가 영어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봄방학부터였다. 입학도 하기 전 영어 교과서 한권을 예습했던 선행학습도 모자라 학교 다니는 내내 영어 과외를 다녔다. 그 당시에도 영어는 대학 합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과목이었기에 모두들 영어에 매달렸고 교과서와는 별도로 ‘성문종합영어’ 떼기가 우리시대의 필수코스였다.
그런데 이게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한 공부는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말하기 공부’가 아닌 ‘점수 올리기 공부’였음을 이방인이 되고 나서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제도권 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적어도 10년 이상 영어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이 영어교육은 남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도 못하는 무용지물의 교육이었다.
미국에 온 시간은 점점 늘어만 가는데 영어는 제자리고 연습을 해도 금세 잊어버리고 막상 대화할 때는 실생활에서 쓰는 간단한 표현조차 버벅거린다. 영어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와서 결국엔 ‘꿀 먹은 벙어리’에 ‘벙어리 냉가슴’까지 앓고 살아가고 있다. 내 영어에 안개가 걷히는 날이 언제일지 답답하다.
<정윤희 /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