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바마케어와 트럼프

2019-04-04 (목)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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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와의 싸움에서 트럼프는 이긴 적이 없다. 공화당 천하의 정치 환경이었던 취임 첫 해부터 오바마케어를 폐지하고 공화당 안으로 대체하려던 입법시도를 두 차례나 좌절당했다. 그런 대통령이 이번에도 뮬러 보고서 공개로 잡은 승세를 몰아 기세 좋게 칼을 뽑아 들었다가 한 발 물러섰다. 정치 현실에 굴복한 것이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법무부 명의로 오바마케어 소송이 진행 중인 연방항소법원에 오바마케어 전면폐지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한편 공화당이 당장이라도 ‘마법 같은’ 헬스케어 플랜을 내놓을 것처럼 큰소리치며 오바마케어 죽이기에 뛰어들었다. 즉흥적 선전포고에 질겁한 것은 공화당이었다.

좌충우돌 대통령에 대체로 굴종해왔던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이 이번엔 심상치 않았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대표는 이번 회기에 헬스케어 입법 재시도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고 척 글래슬리 상원 재정위원장도 “오바마케어는 법원이 위헌판결을 내리지 않는 한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화당 전국위원장과 트럼프 재선 선대본부장도 반대했다.


“공화당의 어떤 대안도 민주당 하원을 통과하지 못한다, 공화당의 ‘자산’이 아니라 ‘약점’인 헬스케어 논쟁 재개는 2020년 선거에서 공화당에 재난이 될 것이다”란 공화지도부의 강경한 반대에 트럼프가 입장을 바꾼 것은 ‘선전포고’ 불과 1주일 만인 지난 1일 밤이었다.

오바마케어 대체를 지금이 아닌 2020년 선거 후로 연기하면서 그로서는 드물게 ‘후퇴’를 한 것이다. 이틀 후 애초 자신은 “선거 전 헬스케어 표결을 원한 적 없다”는 또 다른 말 바꾸기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긴 했지만.

1일 밤 세 차례 트윗을 통해 나온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정리하면 이렇다 : “보험료와 공제액이 너무 높은 오바마케어는 진짜 나쁜 헬스케어다! 민주당도 대체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1억8천만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개인보험을 잃게 할 ‘전국민 메디케어’로 바꾸려한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보다 훨씬 싸고 유용한 정말 위대한 헬스케어 플랜을 개발 중이다. 표결은 공화당이 상원 주도권을 유지하고 하원을 탈환할 선거 직후에 할 것이다…공화당은 ’위대한 헬스케어의 당‘으로 알려질 것이다”

트럼프의 후퇴는 단기적으론 공화당에게 대안 마련의 부담을 덜어주며 안심시켰으나 장기적으론 2020년 선거를 헬스케어 심판대로 만들었다.

트럼프의 헬스케어 이슈화를 환영한 것은 민주당이다. 당장 오바마케어 보강법안을 공개하고, 행정부의 오바마케어 전면 무효화 판결 촉구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켰으며, 오바마케어의 운명을 최종 결정할 연방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오바마케어 보호를 천명했다.

헬스케어 논쟁을 불붙이려던 트럼프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공화당이 헬스케어 이슈에서 도망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2일 밤 공화당 모임에서 헬스케어가 민주당에 유리한 이슈라는 것을 시인하면서 말했다. “지금은 그들이 ‘헬스케어’를 갖고 있다. 우리가 빼앗아 와야 한다!”

그러나 헬스케어는 대단히 복잡하고 상당히 어려운 난제다. 정치적 ‘승리’ 를 넘어 전 국민의 건강에 직결된 중대 사안이다. 오바마케어 통과 이후 공화당은 2010년, 2012년, 2014년, 2016년 매번 선거 때마다 오바마케어 폐지와 대체를 핵심공약으로 내세웠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보다 더 좋은 헬스케어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싸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클린턴부부의 헬스케어 개혁안에 반대한 보수진영의 대안을 기본으로 설계된 오바마케어는 결점이 적지 않은 현행법이다. 그렇다고 전면개혁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USA투데이는 지적한다. 민주당 리버럴 진영의 ‘전국민 메디케어’ 제안은 경비가 너무 많이 드는데다 대다수가 만족하고 있는 민간 직장보험에도 타격을 주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 믿을 만한 대안이 없는 한 옵션은 두 가지다. 오바마케어를 개선하거나 오바마케어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케어보다 훨씬 좋은’ 대안을 장담하지만 믿을 근거가 없다. 트럼프케어와 그레이엄-캐시디 법안 등 지금까지 공화당이 제안했던 헬스케어는 오바마케어의 인기 보호조항들이 대부분 폐지되고 무보험자들을 대거 양산하는 ‘진짜 나쁜 법안’이었다.

‘위대한 헬스케어의 당’을 장담하지만 지금 공화당에겐 아이디어도, 의지도 없다. 민주당은 “대통령은 2021년에 그들의 헬스케어 플랜이 나올 것이라고 트윗했다. 번역하면 : 지금은 플랜이 없다. 오랫동안 되풀이해온 대로 폐지는 원하지만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라고 조롱했다.

1일 발표된 갤럽의 새 조사에서 미 국민들의 우려 사안 1위로 꼽힌 헬스케어는 2020년 선거의 주요이슈로 이미 떠올랐다. 인기 높아진 오바마케어보다 지지도 낮은 대통령에겐 이번에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한편, 공화당의 헬스케어 입법화는 연기되었어도 법정투쟁은 진행된다. 선거 전 최종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이미 두 번이나 오바마케어 합헌 판결을 내린 대법원이지만 트럼프시대에 어떻게 변할지는 미지수다. 만약 오바마케어 전면 무효화 판결이 나온다면, 트럼프는 수백만명이 무보험자로 전락하는 혼돈에 또 어떤 ‘위대한 플랜’ 트윗으로 대처할 것인지…두렵다.

<박록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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