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얼굴 표정
2019-04-04 (목) 12:00:00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
주유소에서 자동차에 기름을 채우려고 했더니 기계 고장으로 상점 안으로 들어와 돈을 지불하라는 사인이 들어왔다. 시간 맞춰 바삐 이동해야 하는데 예기치 못한 이런 일이 생기면 짜증부터 나게 마련이다. 그때 차 밖으로 나온 한 중년 여인도 나와 같은 이유로 짜증이 난 듯했다. 나는 불만 가득한 그 여성의 사나운 눈빛과 마주친 순간 소름이 끼쳤다. 험악하다는 표정이 무엇인지 새삼 느꼈다.
조금 뒤 카운터 앞에 줄서서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 뒤에 있는 할머니를 마주보게 되었다.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는데 그 할머니의 얼굴표정은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나이가 들어 주름진 얼굴이었지만 귀엽기까지 했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미소지으며 쳐다보는 그 눈매의 다정함에 나도 모르게 호감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나도 저 할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보이면 좋을텐데…
내가 하는 약사 업무도 한꺼번에 일이 몰린다. 모두 나에게 빨리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두세가지 일을 한번에 처리하느라 일이 늦어지는데도 늦게 한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리면 화가 나기 시작한다. 부글부글거리는 화를 참으며 해달라고 하는 일을 모두 끝맺어도 대개는 고마워하질 않았다. 그런데 한 약국 테크니션이 솔직히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화가 난 내 얼굴 표정이 자기네들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참았기에 무척 잘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부글거리는 화를 참았다는 건 1차 시험에 통과한 거지만 얼굴 표정에 드러난 내 마음의 화로 내 주위의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니 2차 시험에는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일을 잘하고도 좋은 소리를 못들은 것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면 따뜻하고 온화하며 나이가 들어서도 귀여운 얼굴로 바뀌고 싶다. 그렇게 남들에게 보이면 좋겠다. 타고난 얼굴 생김새는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얼굴 표정은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안겨주는 주름진 외모는 바꿀 수 없어도 그 할머니처럼 부드러움을 풍기는 사람으로 변하고 싶다. 그래서 나를 보는 사람마다 나의 다정함과 친근함에 끌린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